성년코믹은, 뭐 말그대로 에로만화를 얘기하는 거고 명칭은 일본에서 그렇게 쓰이니까, 빌려온 데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 만화만을 근거로 하는 얘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한국에서야 딱히 그런 장르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긴 한데, 오래된 사례로 느껴지긴 하지만 천국의 신화라거나 외설이냐 아니냐로 말도 많았고, 그 이후로도 딱히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일본에는 그런 시장이 있다. 그것도 만화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표지에 '성년코믹'이라는 딱지가 붙는다는 점에서 일반만화와는 격리된 느낌을 주기는 한다. 그래도 두 영역을 넘나들면서 활동하는 분들도 꽤나 알려져있고 최근에 좀 충격을 먹었던 예라면, 작안의 샤나 만화판의 작화를 맡으신 사사쿠라 아야토 씨도 성인만화가고, 다른 유명한 예라면 마호로 매틱으로 유명한 지타마 보우 씨도 성인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요새는 또 Kiss×sis라고 미묘한 작품을 연재하는 것 일반코믹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한국 기준에서 보자면 명백한 성인만화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뭐 어쨌거나 그런 작가들은 결코 적지 않고, 동인지 활동까지도 포함하면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두 만화 사이를 규정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저 성년코믹이 붙느냐 마느냐를 기준으로 달라지는 것은 분명 작품의 소재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선을 넘으면서 두 장르는 형식적으로 완전히 달라져버린다.

먼저 일반 코믹의 얘기인데, 이 경우 어떤 작가의 실질적인 데뷔라는 시점을 정의하는 것은 단순히 작품이 처음으로 어느 잡지에 실린 시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잡지에, 아니 그게 아무리 유명한 잡지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단편 한 작품 실렸다고 그 작가가 유명해진다거나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을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정말 그게 좋은 기회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러니까 실질적인 의미에서 데뷔라는 것은 처음 작품을 싣는 시점이 아니라, 연재를 가지는 시점으로 봐야할 것이다. 단순히 작품을 싣는다는 데서 연재를 가진다는 차이는, 무엇보다도 단편 작품이냐 장편 작품이냐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일반 만화에 있어서 단편 작품이라는 건 실제로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우도 별로 없고, 일종의 맛보기라고 말하는 게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단편이라는 장르가 무의미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한 작가로서 독자에게 인식되기 위해서는 장편이나, 혹은 연재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그릴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야 단행본도 나오는 거고, 이 잡지 저 잡지에서 간간히 단편 연재해봤자 그게 단행본 분량이 되려면 시간도 엄청 오래 걸리고 제대로 출판될지조차 사실 아무런 확증이 없다. 그러니까 단편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있는 잡지 다 구독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단행본은 언제 나올지 알 수도 없고 참 애가 타게 기다리곤 하는 거다. 한국에야 애써서 단편집이 출간되는 경우도 별로 없지만, 단편이란 실질적으로 그 정도 위상밖에는 없다.

어쨌거나 그런 사정에서 성년코믹의 경우는 사정이 180도 달라진다. 물론 대전제는 성년코믹 시장 자체가 마이너 하다는 걸 깔고 들어가지만 어쨌거나, 성년코믹의 대부분은 단편들이고 그리고 단행본은 거의 다 단편집이다. 비교적 길게 그려진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단행본 한 권 분량이 되지 않고, 아무리 길어도 몇 권 분량씩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른바 소년만화나 순정만화의 수십권씩 연재되는 경우야 그런 경우 자체를 또 하나의 특수한 경우로서 봐야하고 그런 경우와 비교할 필요야 없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경우를 무시하더라도 상당히 짧은 작품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그 유명한 이야기인 '포르노에는 스토리가 없다'라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지점에 해당하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는 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성년코믹에도 스토리가 없다. 실질적인 스토리가 없으니까 한 작품 한 작품이 매우 짧은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거다. 결국에 거기에 남는 건 그러니까 성행위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또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는 얘기가 된다.

단순히 형식면에서 일반만화의 단편과 성년코믹의 단편을 동질적으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사실 장르를 넘어서서 내용을 가지고 두 가지를 나눠본다고 한다면 분명히 이 두 단편이라는 형식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근데 이 때 말하는 내용이라는 것이 단순히 성행위만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그거야 뭐 일단 당연한 건데, 일반 만화에서 단편이라는 것은 사실 기본적으로는 장편 만화의 전개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기승전결이라고까지 거창하게 말할 건 없겠지만, 어쨌거나 어느 쪽이건 일반만화는 스토리를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나는 스토리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변화라고 생각한다. 기승전결이라는 표현도 분명히 그걸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라고 생각하고, 기본적으로는 물론 주인공들의 심리변화겠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그것은 분명히 독자의 심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원동력이고 따라서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무엇보다도 큰 힘은 바로 공감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만화는, 여느 픽션이 그래왔듯이 기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세계이고, 거기에 발맞춰 울고 웃고 감동도 받고 그럴 수 있는 장르라는 얘기다. 그것이 얼마나 독자에게 크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독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가지고 명작이냐 아니냐가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일반 만화에서 작품과 현실은 결코 단절된 세계가 아니다. 이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단서인데, 성년코믹에서 무엇보다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소재가 달라졌다는 것뿐만아니라, 그리고 장편만화와 단편만화의 비중과 중요성이 역전된다는 지점도 아니라, 바로 작품 세계가 현실과 단절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성년만화까지 갈 것도 없이 포르노 무비조차도 별로 현실적이지 않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거기서 다루는 카메라의 시선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시선이고, 소재적으로 이미 다른 세계라고 봐도 무방한 경우가 적지 않다. 세계 어딘가에는 그런 세계에서 사는 사람도 있나보다 싶기도 하지만, 그것이 만화로 넘어가게 되면 사정이 더 어려워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예를 들면 상당히 과격한 패러디 만화가 카네히라 모리히토 씨의 이야기,

그리고 범죄자 예비군에게 어드바이스!! 생판 모르는 초등학생 여자애가 너한테 '오빠(오니땅)'이라고 부를 리도 없고... 초경도 안 온 여자애가 기마위로 '기분 좋아(気持ちいいー)'라고 좋아할 리 없잖아!! 안타깝지만!!1


이것도 뭐 당연한 얘기지만, 이 어드바이스는 이중적인 세계관 위에 놓여있다. 하나는 물론 현실이고, 또 하나는 로리 만화를 겨냥한 거다. 요새야 성년코믹 시장에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게 어린 여자애를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른바 로리라는 소재인데, 정확히 이 두 세계를 비집고 들어가면 그러니까 저런 얘기가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저 얘기는 성인만화 세계 자체에 대한 쯧꼬미이기도 한 거다. 쯧꼬미란 일본의 만담 콤비가 한 쪽이 멍청한 소리를 하면(이걸 보케라고 한다) 거기에 대해서 '그럴 리가 없잖아!'하고 되받아치는 걸 말한다. 보케는 필살 쯧꼬미를 맞고 무대 뒤편으로 멀리 날라....... 갈 리 없잖아! 하는 느낌으로.

물론 만화니까, 장르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상의 세계니까 별로 그래도 상관없기는 하다 ㅡ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ㅡ. 어쨌거나 주목해야할 지점은 이미 이 지점에서 두 세계, 즉 성년만화의 세계와 현실은 타협의 지점을 잃어버렸다는 거다. 무슨 얘기냐면 성년코믹에는 공감할 수 있는 지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그걸 자기완결적이라거나 자폐적인 세계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세계. 그러니까 바로 그 지점에서 생각해보건데, 공감할 수 없는 세계에 스토리라는 걸 쓸 수 있겠냐는 거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스토리라는 건 심리변화가 전제되어있어야한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현실과의 세계를 완전히 단절시킴으로서 거기에 있는 모든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공감할 지점이 전혀 없어지게 되고, 따라서 스토리라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지점에 내몰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포르노에는 스토리가 필요없다. 물론 그것도 맞는 얘기지만, 이 경우 성년코믹은 스토리라는 걸 애시당초에 그릴 수 없다는 얘기도 된다. 거기에 스토리가 없는 건 필요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그릴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는 거다. 그리고 그렇듯 공감이라는 요소가 완전히 배제됨으로서 거기에는 순전히 응응하는 것만 남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성년코믹은 일반 만화와는 완전히 다르게 발전을 해나가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성년코믹이 자기완결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공유하고 있다는 한에서,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귀결된다.

그 하나가 그림이라는 표현수단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선 코마로 대표되는 만화의 표현법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지만, 무엇보다도 스토리를 전제하지 않은 가운데서 성행위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하는데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부을 수 있었다는 거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일반만화보다 성년코믹에서 기본적으로 요하는 그림 수준도 높다고 해도 무방하다. 일반만화계에는 그림을 별로 못 그리는 작가가 얼마든지 있다. 물론 그거야 어디까지나 만화가 수준에서 하는 얘기지, 일반인에게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만화의 신이라고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2가 뎃생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유명한 얘기고, 그리고 아무래도 스토리를 주무기로 싸우는 작가들의 경우는 그림 자체의 개성이나 수준보다는 연출이나 대사 훨씬 더 큰 무게를 두는 게 사실이다. 만화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문제는 일단 제쳐두더라도, 어쨌거나 성년코믹을 그리는 만화가들은 그런 의미에서 그림 자체에 대한 자유를 만끽하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게 안 되면,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타석에 들어서기도 전에 아웃이니 말이다.

두번째는 세계관 자체다. 어떤 성년만화건 기본적으로 자기완결적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고, 그렇다면 바로 다음에 할 일은 그 세계관 자체에 변주를 가하는 거다. 이것은 보통 소재라는 것으로서 드러나고, 예를 하나 들면 위에서 얘기했던 로리라는 것도 이러한 세계관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서는, 뭐 그게 그런 거다. 섹스로 대표되는 성년코믹에 대해서 사실 같은 범주에 넣는 게 조금 애매하다고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런 극단에 있는 세계가 아마 고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성년코믹은 인간을 섹스의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리는데, 이른바 고어라는 장르에서는 인간을 그냥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린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하는 거고, 그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가장 할 수 없는 혹은 해서는 안 되는 그런 것만을 인간이라는 대상에게 부과시키는 거다. 이 부분 역시 앞선 그림이라는 표현수단과 맞물려, 그것 자체에 전념하고 거기엔 별 이유도 없이 사람을 이러고 저러고 막 그러는 거다. 그러니까 거기에 별 이유같은 건, 그리고 목적도, 그런 건 애시당초에 없는 거고, 간단히 말해 표현 자체에 경도된 극단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에로와 고어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연관이 있어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아마 고어라는 장르는 이미 해부학이 일본에 유입되는 시점에서 거기에서 모티브를 빌린 그로테스크한 표현들이 등장했고 일찍이 에로와는 한 선을 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년코믹의 대부분을 단편이라고 얘기하기는 했지만, 물론 그것보다 긴 작품들이 없는 건 아니다. 장편이라고까지 말하긴 뭐하지만 적어도 대충 임시로 정의하건데 총 페이지 100p 이상에 3권 미만으로 중편이라고 할만한 작품들은 또 결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주목 받는 작품 중에 중편 작품이 들어가 있거나 하는 경우도 많아서 이건 이것대로 흥미롭다. 이야기가 늘어지는 대표적인 작가 중에 하나가 카미렌쟈쿠 산페이 씨인데, 아마 이 정도로 캐막장 만화는 찾아보기 힘들 거다. 이 작품은 위에서 이야기한 자기완결적인 세계관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내가 한 얘기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자기완결적인 세계에 스토리가 있을 수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왜냐면, 거기에 없는 건 공감이지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공감이 없는 스토리는 얼마든지 쓸 수 있고, 그럴 경우 그건 폐기물이 되던가, 그 아스트랄한 센스가 받아들여져 이런 작품이 되던가 둘 중 하나인 거다. 대체로 전자고, 후자에 있어서는 특히나 세계관 자체가 개그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작품일 거다. 그 외에 내가 몇 번이고 칭송했던 (야, 야...) 스에 히로가리 씨 작품도 흥미롭다. 이 분 작품에는, 기본적으로 스토리를 그릴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고 있다. 예를 들어 스에 히로가리 씨는 노출이라는 소재를 즐겨 쓰는 걸로 알고있는데, 처음부터 그 소재를 대놓고 이용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결론이 유예된 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무지막지 고민한다거나 한다. 그 지점에 최소한의 공감할 여지가 남아있고, 진짜 재미있는 건 이야기를 진행시켜가면서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변하고, 주인공의 심리상태에 따라서 세계 자체가 바뀌어버린다는 거다. 그렇게 도착한 세계도 또 하나 공감의 여지란 전혀 없는 세계지만, 이 작가가 시도하는 건 독자를 그 세계로 끌고들어가보려는 거다. 뭐니뭐니해도 일단 정말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그저 연출을 에스컬레이트시키기 위해서 장편 쓰는 작가 분도 있는 것 같고, 우지가 Y타 씨 같은 고어 작가의 경우는 사람을 유린함으로서 현실의 윤리 기준 자체를 유린하는 대표적인 경우이기도 하고, 또 마치다 히라쿠 씨는 일단 단편 작가이기는 한데 자신의 세계관 자체에 염세적인 입장을 가지면서 역설적으로 현실과 이어지는 부분을 가지기도 한다. 그런 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인데 일어나고 있다는 투로 작품을 그려나간다.

ㅡㅡ 험한 꼴은 다 당해놓고 '버릇이 될 것 같아'라고 말이죠. 아직도 그런 데다 컴퓨터로 색칠한 정도로 신선미를 내려고 하는 작가도 많다는 게 놀랄 일이죠. 에로를 무시하고 있죠.

마치다 : 실용적인 의미에서는 그건 그것대로 완벽한 에로만화입니다만, 단지 전, 당하고 나서 마지막에 '냐하❤ฺ'라고 하고 웃는 여자아이한테도 처음이라는 게 있을 건데, 그걸 생판 모르는 녀석이랑 해놓고 '에헤'하고 웃는 이 여자애를 보며 지금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나 에로만화가가 많은데, 좀 더 다른 결말을 생각해봐도 좋을 텐데 말이죠.

(중략)

ㅡㅡ 지금 마치다 씨는 만화팬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데, 소개하는 문구 중에는 부도덕한 부분이 무시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에로예요, 포르노예요, 라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제쳐버리는 거죠. 이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마치다 : 그런 것도 있죠. 이런 식으로 로리타 매니아가, 로리콘이, 인정받는다고 하면 그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리로콘이 소녀는 천사고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데는 신물이 나죠. '소녀의 몸은 아름다워요'라고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 움찔하죠. 입에 침바른 소리만 하는데, 하고싶은 것 뿐이잖아 하고 생각해요.

(중략)

―― 마치다 씨가 그리는 여자아이는 좀 두렵지 않나요?

마치다 : 무섭다고요?

ㅡㅡ 그렇게 당해놓고 '뭐 상관없나'하는 눈으로 쳐다보잖아요.
ㅡㅡ 맞아요. 소녀를 공격하면서도 공격당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요.

마치다 : 그건 제 자신이 로리콘이니까. 그런 내가 참고있으니까, 사회기준을 지키고 상식적으로 생활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도 참아라,고. 앞뒤 못 가리고 장난 치지 말라고, 부럽잖아,하고.

ㅡㅡ 그 강렬한 눈으로 못박아버리죠.

마치다 : 무섭다고 생각해주지 않으면 곤란한 거죠. 여자아이와 동시에 주변에서의 공격도 무섭다고 생각하주지 않으면. 본인들은 얼버부리려고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로리콘을) 깨끗한 말로 정당화하는 발언도 하지 않고 '입은 모든 원흉의 근원이니까 이 건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말고 입다물고, 조용히 있어. 단지 생각하면 그걸로 되잖아.'라고 생각하겠죠. 추리소설이든 트릭을 쓴 범죄를 다루는 작품은 사라지지 않겠죠. 그런데 로리타 작품들만은 살인보다 무겁게 다뤄지는 의미를 로리콘들은 생각해야봐야한다고 생각해요.

Quick Japan 22호 「마치다 히라쿠」를 「읽지마」!3


라거나,

가끔 신문에서, 랄가 그런 보도를 듣곤 하죠 「~10살 소녀가…」
귀를 막아버리고 싶은 기분이에요, 가능하다면 몰랐으면 하는 사건이에요, 제 상상에서만 일어나야하는 일이죠. 왜냐면 현실에서 실행하는 녀석이 있다니… 로리콘들에게 희망을 주잖아요. 저를 포함해서….
나는 꿈은 팔지만 희망은 절대로 팔고싶지않다.

마치다 히라쿠 '청공의 십삽회기' 해설(green-out 수록)


조금 인용이 길어졌는데, 솔직히.... 솔직히....

이거 보고 무지 웃었는데, 뭐 분명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이야기가 길어진다거나 스토리성이라는 건 성년코믹 자체와 상성이 별로 안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릴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뛰어난 작가라는 게 보장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그럴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작가의 역량과 개성을 보장한다.



으음, 그러니까 이런 글 쓰기 싫었다니까... 뭐 어쨌거나 예고했듯이 이건 다른 얘기를 하기 위한 전제이고, 본편은 또 시간 나는대로.
1 KANEHIRA-DEATH 180p
2 여담이지만
3 2차 출처 : yusurakinaco.blog92.fc2.com/blog-entry-162.html
낯설음과 선명함, 그리고 해석의 여지의 부록.

해석. 거리재기. 공백매우기. 나아가서, 공백 찾아내기. 공백 만들기. 그리고 다시 매우기.

비평, 평론. 작품을 덮치기. 작품으로 급격히 접근함. 평가하고 제단하기.

표현론, 도구론. 만화에 있어서의 표현론은 해석이고도 해석이면서 비평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특정한 장면을 분석함으로서 그 표현이 담고 있는 기술적이고 맥락적으로 완전히 다른 의미를 도출해낸다는 점에서는 해석이지만, 반대로 표현 방법 자체만을 가지고(혹은 거기에 의존해서) 장면을 평가한다는 점에서는 비평이다. 도구에서도 알 수 있지만 어떤 음악가가 어떤 악기를 쓴다는 것이 그 작품 전체를 말할 수 있을까? 표현이나 도구로 작품에 접근한다는 건 그런 인상을 강하게 준다.

감상. 작품에게 사로잡히기. 작품이 급격히 접근해옴. 감동, 불만. 나는 이럼 감성이 복원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감상이라는 글을 내용으로서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글 자체보다는 공감이나 반감, 혹은 동기로서만 가치있다. 반면에 해석이나 비평은 복원이 아니라, 쓰는 자리에서만 발생하는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로 신뢰할만하다. 물론 동의를 하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리뷰, 프리뷰. 단순히 작품만을 보는 행위. 이를 테면 해석이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공백에서 발생된다면, 리뷰나 프리뷰는 작품 자체에 중점을 둔다. 나아가 해석이 발생할 여지를 철저히 배제하거나, 매우 소극적으로 제시한다. 즉, 감상자 자신의 위치를 가능한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상과 같은 감동도 느껴지지 않을 거고, 비평도 될 수 없다. 그런 점을 (네타 없이) '정보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하지만.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고, 소유한 사람에게는 딱히 필요없다.

리뷰-비평. 리뷰는 작품 자체에 집중하고, 그렇다보니까 작품의 외적이나 기술적인 의미에서 이른바 스펙에 중점을 맞추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면 dvd 리뷰라면 음성이나 화질, 패키지 상태, 부록, 번역 같은 것들이 총체적으로 다뤄진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데 대한 비판과 강한 불만이 제기되곤 하는데, 여기서의 비평은 당연하지만 작품에 대한 비평이 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제품에 대한 비평이자, 작품에 대한 리뷰가 될 것이다.

리스트. 취향. 취향이 맞는다면 접근법보다는 다루거나 관심을 가지는 리스트 자체가 유용한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 리스트는 새로운 작품들을 탐험하는 데 무엇보다 좋은 길라잡이 역할을 해준다. 아직 그런 경지는 아니지만 좋은 리스트를 구하는 건, 매니아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리뷰나 프리뷰, 그리고 감상은 취향 면에서 독립적인 사람에게는 딱히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다. 그런 글은 집합으로서 리스트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르, 분류. 이런 접근법은 극히 일부에서밖에 못 본 것 같다. 왠만큼 매니아가 아닌 이상 다루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장르나 분류의 정의를 정교화함으로서 작품들을 분리하고 특징지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자체는 해석에 가깝고 (여기서 해석은 작품에 대한 해석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르로 분류를 하는 건 비평에 가깝다. 내가 써둔 글에서라면 '만화의 장르와 만화를 대하는 태도' 같은 글.

별점. 별점은 아무 기준으로든 사용될 수 있는 것 같다.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 사이에서 애시당초에 그 기준이란 통일적이지 않다는 것만 이해한다면, 오히려 통일될 수 없기 때문에, 권장되는 게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픽션을 즐기다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아, 이거 다 사기구나. 아니, 뭐 '이건 픽션입니다'라는 훌륭한 경고문구가 이미 붙어있기는 하지만...

최근에 이런 기분을 느껴야만 했던 건 역시 니시오 이신 씨의 작품인데, 이 작품은 주인공 이짱이 주장하는 바로서의 허무와 함께 도 하나의 허공을 가지고 있다. 그건 주인공들이 말하자면 능력자라는 점이다. 과학에서는 올바른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변인을 통제해야고 한다. 무슨 얘기냐면 이 작품이 추리소설이고자 한다면, 능력자는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능력자의 능력이 상식적인 의미에서 추리로서 이 작품을 즐기는 걸 근본적으로 방해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것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이 작품에서도 이미 시세이 유마와 아이카와 준의 결투 부근에 가면 거의 초인 대결이라는 느낌밖에는 없다. 상식을 넘은지는 옜날이고,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있을뿐 내용면에서 그런 건 이미 박살나있는 거다.

아니아니, 그래서 정말로 문제인 건 뭐냐면 그러니까 주인공들이 능력자라는 거다. 능력자.... 능력자.... 음,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명칭인데. 아! 부기팝! 그러고 보면 카도노 코우헤이 씨 작품 후기에 아라이 히데히코 씨의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라는 작품을 좋아하신다고 했었던가. 그리고 니시오 이신 씨도. 이런 초인들의 기원은 죠죠인 겁니까 oTL.

어쨌거나, 능력자가 문제가 되는 건 사실 그 부분이 텅비어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천재와 소설 속에서의 천재.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존재다. 현실에서의 천재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그럻게 불릴 수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작가가 '천재'라고 불러주기만 하면 되는 거다. 마치 쿠나기사 토모가 그렇듯이. 컴퓨터 공학의 천재라고 얘기되는 쿠나기사 토모는 소규모 어떤 집단의 수장으로 컴퓨터 분야에 있어서 세계를 일변하게 만든 어이없는 인물이다. 설정으로는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 내에서 호소하는 그녀의 성격이나 특성은 분명히 이런 재능과 직접적으로 결부되는 문제인 거다. 넓은 의미에서 능력자들의 재능이 특이함이 개성이 그들의 운명을 만들어낸다는 거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거기가 텅 비어있는 거다. 그런 재능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가끔씩 나는 내 자신이 엄청나게 바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쿠나기사 밑에 있었던 우츠리기 가이스케는 쿠나기사를 자신의 천조배라고 표현한다. 그 녀석도 상당한 천재라는 설정이지만, '뭐야 이 유치한 수치는'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냉정하게 생각해봐라. 인류 합계를 넘어서지 않는가! 토모의 재능은 전인류의 가치에 필적, 아니 그런 건 너무나도 가볍게 뛰어넘는 거냐!

만약에 그 기반이 사기라면, 토모는 물론 토모의 운명 또한 사기다.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런 거다. 게다가 TAKE 씨의 일러스트는 또 뭡니까! 사기다아!!!!

이건 '만들어진 거다'. 이건 만들어진 이야기다. 현실과 동떨어진만큼 그 사이가 텅 비어있는 거다. 그런 걸 보면서 이걸 진짜라고 생각해버리니까 말이다,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픽션이 재미있을리 없고 말이다. 그게 말하자면 작가의 상상력이기도 하고, 독자의 상상력이기도 하겠지만, 그게 사기라는 데 별반 달라지는 건 없다. 아니, 사기가 아니라 픽션이라고 말하던가. 그러니까 나는 지금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그것은 픽션이다, 라고 하는.



픽션의 의미를 곱씹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확실히 픽션이 공허하다는 의견은 의외로(?) 적확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니시오 이신 씨의 작품을 들어본 건, 저 천조배라는 표현에 울컥해서 그걸 부정하고 싶어서는 절대 아니다. 절대로... 어, 어쨌거나 말이다. 픽션이라는 건 현실에 구멍을 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토모라는 존재는 말하자면 노골적이고 커다란 구멍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는 없는, 그런 구멍. 이런 구멍은 특이한 게 아니라 어제 이야기했던 트랜스포머 같은 헐리웃 영화에도 있고 어디에나 있는 거다. 이런 구멍은 어쩌면 수학식을 푸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아, 물론 수학의 엄밀성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수학식을 푸는 과정에 같은 식이 얼마든지 다른 모양으로 그려질 수 있다는 그걸 말하는 거다. 일부러 이상하게 표현한다든가 거품이겠지만 그런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말하자면 현실은 가장 간결한 수학식이다. 아니, 픽션에서라면 틀린식을 써버려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픽션을 공허하다는 주장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수학식은 이미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더더욱 픽션은 공허하다는 입장을 수용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픽션은 공허하다. 오히려 현실에 그러한 공허한 구멍을 내는 게 목적이라는 거다.

단지 픽션의 덕목이라는 건 아마 그런 구멍들을 숨기고 교묘하게 표현해나가는 거였다고 생각한다. 즉 그것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그려나가느냐 하는 건데, 그런 면에서 본자면 니시오 이신 씨의 묘사는 거의 강요라고 해도 좋다. 몇조배라니 인물묘사에 그런 투박한 표현 안 쓴다니까요. 라이트노벨의 그런 면을 만화적이라고 하는 거지만 말이다.

아, 위에 언급했기에 트랜스포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트랜스포머 같은 작품 역시 그런 구멍을 낸다. 단지 이런 작품은 스토리 자체가 그런 구멍을 매꾸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다. 키토 모히로 씨 작품에서 지어스의 역할과 비교해봐도 이런 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구멍들에 대한 증오가 느껴질 정도로. 그 녀석들은 결과적으로 자동차로서밖에 살아갈 수 없다. 인간세계에 있어서 그들은 그렇게밖에는 존재할 수 없는 거다. 구멍은 그렇게 매꿔졌다.



1. 그 구멍이 운명이자 곧 갈등이 된다. - 니시오 이신, 지어스
2. 구멍은 매꿔져야 하고, 우리에겐 돌아가야할 일상이 있다. - 트랜스포머


트랜스포머적인 방향성을 실패했기 때문에 비극이 된 작품은 최종병기그녀 같은 작품이 아닐까.

여기에 한 가지 유형을 더 더한다면,

3.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고 모르는 척을 한다.


도 있을 법하다. 좀 더 그럴듯하게 말해보면 이 구멍을 어떻게 대해야할지에 대한 지향성이 없는 거다. 아마 시무라 타카코 씨라거나 토미자와 히토시 씨의 작품들이 그런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전에도 이 작품들에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었는데, 에이리언과의 공생기와 사춘기소년소녀의 이야기를 도통 비슷하다고는 말할 수 없기에 그냥 넘겼었다. 그래도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확실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무라 타카코 씨도 생각해보면 이야기 변주의 천재이신 것 같고. 백합, 여장, 남장, 사춘기, 여자프로레슬링.....

음, 난 이 계열 작품들이 제일 좋다. 근데 별로 없다 T_T. 그 다음이 1번 유형, 이 작품들에서 느끼게 되는 치열함도 좋아한다. 단지 좀 많이 우울해지곤 하지만. 2번 유형은 실상 타임킬링용이고... 개그는 개그대로 4번 유형을 만들어야 될 것 같은데 귀찮다. 나중에 생각해야지. 스타리그 봐야된다 -_-;;

저는 다 필요없고, 개그가 제일 좋아요 T_T. 개그맨, 그리고 개그만화가 그들은 신입니다!

에로만화는 대체로 스스로 만든 '섹스'라는 구멍으로 미칠듯이 빨려들어간다, 그것뿐..........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