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도래 기념, 포스팅



토미자와 히토시 씨의 이름을 잠시나마라도 드높였던 건 에이리언9이었지만, 이 분의 단행본 데뷔작은 에이리언9이 아니었다. 데뷔작은 94년부터 95년에 걸쳐서 주간소년챔피언에 연재된 작품 히젠야 쥬베라는 작품이었다. 토미자와 씨는 바키의 작가인 이타가키 케이스케 씨의 어시스턴트를 지낸 걸로도 알려져있는데, 그 영향을 크게 받은 그림체의 소년만화로 인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내 자신도 그렇지만 오히려 에이리언9이 이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인식시켜준 것 같다.

개인적으로 히젠야 쥬베라는 작품에 대해서는 딱히 재미있는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철저히 완결되어있다. 자기완결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어제 포스트에서 다룬 바있는데, 어쨌거나 마찬가지 의미에서 이 작품은 독자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전혀 주어져있지 않다. 같은 소년만화라는 장르에서 작품을 추천한다면 나는 결코 이 작품을 추천할 생각이 없다. 원피스 같은 유명하고 좋은 작품 놔두고 이 작품을 추천할 이유라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원피스라는 작품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라는 건 무엇보다도 독자와의 교감이다. 작품을 보면서 주인공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고, 그것없이 원피스라는 작품이 가지는 감동은 당연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히젠야 쥬베라는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종잡을 수도 없이 정신없이 그저 뛰어다닐 뿐이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알 수 없고, 거기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하는지도 알 수 없다. 모험이 있다. 그런데 단지 그것뿐이라, 물론 이 작품에도 작가 분이 가진 너무나도 뛰어난 상상력을 고스란히 담고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런 면이 잘 다듬어져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이건 썩은 동아줄이고 기름친 나무와도 같아서, 그저 스토리는 미끌어지고, 장점들 역시 거의 아무런 의미도 없이 스스로 증발해버리고 마는 거다. 그런 상상력들조차도 사실은 그 자체로서 매력을 발산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만화는 일러스트가 아니다. 스토리에는 언제나 공감을 통한 중심의 이동이 필요한 법인데, 실패라고할까 무시라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별 재미가 없다.

거기서 에이리언9으로 넘어가는데 그 이후로 몇 년인가가 지나서 쥬베를 그린 작가가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한 작품을 가지고 나타난다. 이번엔 영챔피언이라는 월간지에서 연재를 하게 되는데, 사정도 달라졌고 그리고 작품도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나 이타가키 가이스케 씨의 영향력으로 얘기되던 근육질의 그림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차라리 모예계 작품이라고 얘기될 법한 그림체를 가지고 인류와 정체불명의 에이리언을 주제로한 작품을 그려나간다. 이 점이 물론 가장 주목해야할 점이고, 주목받았던 점이긴 한데, 개인적으로 또 하나 주목해야할 점은 이 작품이 히젠야 쥬베에서 가지고 있던 자기완결성을 거의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쥬베와 거의 같은 맥락에서 '스토리'는 에이리언9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에이리언9이 아니메화 됐을 때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독자를 생각하는 작가가 아니고, 스스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그려왔다고 이야기한다. 에이리언9도 그렇고 그 이후의 작품들도 그렇지만, 이 분은 자신이 그리는 세계에 대해서 거의 아무런 주석도 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그러니까 바로 자기완결적인 세계에서 비롯되는 특성인데, 작품은 현실이 아닌 이미 완전히 그 작중의 세계에서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설명할 이유라는 게 별로 없는 거다. 작품 안에서 그것은 그래서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왜 에이리언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에이리언이 있는 세계니까, 아마 이것보다 좋은 대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강요 아닌 강요와 또 보여주는 것과 가리는 것의 기묘한 밸런스는 토미자와 히토시 씨 작품들의 매력을 구성하면서도 독자들에게 견디기 힘든 불쾌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히젠야 쥬베는 그런 불쾌감조차 일으키지 못 했음에도 불구하고, 에이리언9에서는 그런 불쾌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거기에서 '스토리'는 토미자와 히토시 씨 작품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되면서, 독자에 대해서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돌변하게 되는 거다.

이건 일단 불쾌감이라고 표현해두기는 하지만, 아마 토미자와 히토시 씨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데 있어서 매력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불쾌감은, 그러니까 히젠야 쥬베에 없었던 이 감각은 크게 두 가지에서 기원하다고 보여진다.

하나는 그림에 다름 아니다. 쥬베에는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가지고 그림으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요소도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연출면에서 그렇게 재미있는 표현들을 담고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그러니까 이타가키 케이스케 씨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얘기도 아직 이렇다할만한 개성을 발휘하고 있지 못 했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성인만화가 자기완결적 세계관에서 그림이나 연출에 대해서 엄청난 공을 들이듯이, 에이리언9에서 이 부분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개성적이고 또 재미있어진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인체변형 모티브가 토미자와 씨 작품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쓰이는 것도 고어가 이러한 표현이라는 주제의 극단에 있었던 것과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분은 인간을 성의 대상으로 그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어와 같이 유린하기 위한 대상으로 삼는 것도 아니다. 순수하게 표현의 자유만이 남아, 거기에 부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밀크특공대 부근이 이런 면에선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세계를 구성하는 상상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그림과 연출은 누가 감히 흉내내보겠다고 흉내낼만한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작품이 나왔을 당시 에이리언9이 주목받았던 것도 실제로 무엇보다도 '표현'면에서 그랬었다고 한다. 무라카미 타카시 씨는 토미자와 히토시 씨에 대해서 오오토모 카츠히로 씨가 가졌던 파괴력을 가진 작가라고까지 이야기했고, 거기에 대한 동의의 흐름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연출이나 만화 표현이라는 주제에 별로 익숙하지도 않고, 서브컬쳐 예술가로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이 분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고 그래서 함부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쨌거나 오오토모 카츠히로 씨가 공공연히 일본 만화에 있어 (특히나 표현이라는 주제에서) 한 휙을 그은 작가로 인식되고있는 걸 생각해본다면, 이런 평가는 선구자의 이름을 빌려서 받는 평가로서는 거의 극상의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작가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에이리언9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그런 작품으로 다가갔던 것이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나는 사실 토미자와 히토시 씨 작품 때문에 만화가 좋아졌기 때문에 이 작품이 그 이전부터 만화를 봐온 사람들에게 가지는 의의라는 건 크게 와닿는 얘기는 아니다. 어쨌거나 무엇보다도 쥬베와 에이리언9 사이에서, 바로 이런 점이 그림의 변화가 가져온 극적인 작품 전체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스토리다. 앞서서 이야기했지만 에이리언9은 여전히 자기완결적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 한 작품이고, 랄까 거기에서 전혀 벗어날 생각이 보이지 않는 작가 분이고, 따라서 스토리를 그린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면 스토리라는 건 공감을 만드는 일인데, 제멋대로 완결되어 있는 세계를 보면서 현실에 빗대어 거기에서 공감을 느낄 거리라는 것은 실제로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에이리언과 인간의 관계에서, 작품을 통해서 맞이하는, 현실에는 없는 그 관계라는 것은 공감의 대상이 아니다. 아니, 될 수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특히나 보구화된(에이리언화된) 쿠미가 유리에게 공생욕을 느낀다거나 하는 장면은, 그게 어떤 감정인지도 거기에서 무슨 감정을 느껴야하는지 그런 건 전혀 알 수 없다. 알 수 있다면, 당신은 어디에서 온 에이리언인가?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미자와 히토시 씨는 스토리를 전개시켜나가는데, 그렇게 함에 있어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방식이 도입된다. 이것은 그저 우연이었는지, 독자에게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어쨌거나 에이리언9과 독자를 이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그게 '오해'라고 생각한다.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이해시키고 공감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독자가 아는 무언가라고 오해를 유발시키는 거다. 물론 이는 결코 작품 세계의 이해를 돕는 장치가 아니다. 이건 단지 작품 세계와 독자의 이해에 대한 어긋남만을 발생시킬 뿐인데, 그러니까 바로 그 지점에서 결코 매꿔질 수 없는 불쾌감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에이리언9의 세계는 에이리언이 인간 세계를 지배해나가는 세계가 아니다. 만약 이 작품을 억지로 '지배'라는 이름을 넣어서 표현해야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에이리언이 이미 지배하고있는 세계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계는 그런 세계다. 그렇다면 이 세계를 독자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이해시킬 수 있을까? 무작정 알아주기를 기대해봤자 스토리는 미끌어지고 쥬베가 그랬던 것처럼 그저 실패할 뿐이다. 거기에 유리, 쿠미, 카스미로 대표되는 주인공이 있다. 이 주인공들의 역할 자체가 일종의 '오해'인 셈이다. 주인공들은 이 세계를 독자가 잘 알고 있는 세계라고, 그리고 이 소녀들을 독자가 잘 알 수 있는 그런 우리 주변 어디에 있는 아이들이라고 착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럴 리는 전혀 없는 데도 불구하고, 독자는 그 덫에 완벽히 걸려들게 된다. 이런 덫을 더 정교화하기 위해서 독자에게 주어지는 배경 정보 역시 철저하게 제한되고 따라서 에이리언9 본편은 학교 밖의 공간이 독자로부터 철저하게 배격된다. 작품 중간중간에 비행기라거나 헬리콥터가 간간히 보이곤 하지만, 스토리와는 전혀 관계도 없고 이것들은 그저 이 마을의 정체에 대한 수수께끼만을 증폭시킨다. '에이리언이 있는 풍경'을 '에이리언이 습격한 풍경'으로 그렇게 오해시키는 거다. 이 세계에 대해선 나중에 후속작에 해당하는 에뮬레이터즈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난다. 본편이 마치 좁은 골목길을 달려온 느낌이라면 에뮬레이터즈는 탁 트인 광장에 나온 기분이다. 이제 주인공들은 전철을 타고 학교에 등교하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알 수 없었던 '우주선'을 처리하는 우주선 처리장이라는 마치 현실의 쓰레기 처리장과도 같은 공간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병원에는 아예 에이리언과라는 분과까지 있다. 그러니까 제 9초등학교라는 여지껏 이야기해오던 본편의 무대는 이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는 일부에 지나지 않고, 이 세계는 사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세계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뿐이다. 이 세계는 현실의 패러럴월드조차 아니다. 패러럴월드하면, 평행우주라는 소재가 밀크특공대에서 고스란히 사용되기는 하는데 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때 평행우주라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한 평행우주가 결코 아니다. 마치 히젠야 쥬베가 완전히 독립적인 세계관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과 같이, 사실은 에이리언9의 세계 역시 그러한 완전히 토미자와 히토시 씨의 상상력에 기반한 세계라는 것이다. 단지 그 세계는 우리의 현실의 흉내를 내고있을 뿐이고 그런 점이 독자로 하여금, 마치 그 세계를 알고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에이리언9 세계의 인간과 에이리언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어느 쪽도 별로 인간적이지 않다는 거다.

스에 히로가리 씨가 자기완결적인 자신의 작품에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이 만든 세계 자체에 유예기간을 부여했다면, 토미자와 히토시 씨의 전략은 이렇듯 독자를 오해시키는 거다. 이 오해는 양 세계와 맞물려서 현실을 작품 세계에 교차시키면서, 여자아이들을 유린하는 작품 세계를 매우 불쾌하게 느끼게 만든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지 마치 그것을 현실의 문제처럼 느끼게 하고, 따라서 작품 세계를 매우 잔혹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이건 결코 결과적인 실패가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너무 훌륭한 성공이라, 작가 분의 상상력에 의존해 만든 세계를 거의 온전하게 작품 내에서 그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해 공감이 있을 수 없는 세계를, 독자에게 흥미롭게 제시했다는 얘기다. 그게 바로 에이리언9의 공포이고 불쾌감이고, 그리고 바로 매력인 셈이다.

토미자와 히토시 씨와 자주 비교되는 작가로, 잔혹하다는 수사로 대표되는 또 다른 작가로 키토 모히로 씨가 있다. 그런데 나는, 비교적 자유분방하다는 에프터눈에서 가장 제멋대로 작품을 그린 세 작가로 꼽히는 이 두 작가에 대해서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ㅡ 나머지 하나는 우에시바 리이치 씨 ㅡ 닮아있기는커녕 차라리 상극의 위치에 있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오히려 이 두 작가를 억지로 같은 지점으로 몰아세우고자 한다면 그 표현이 그나마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키토 모히로 씨의 작품을 생각해보는 건 분명 토미자와 히토시 씨의 독특한 위치를 정의하는데 주요하다. 예를 들어 키토 모히로 씨의 나루타루(드래곤 드림)라는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죄의식'이라는 걸 걸고 넘어지는 작품이다. 에이리언9은 결코 잔혹한 세계를 그린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그런 느낌이 들게 만들었을 뿐인데, 나루타루는 그냥 처음부터 대놓고 잔혹한 작품이다. 용의 아이라는 현실에 있어서는 안 될, 그런 이형의 존재를 주인공들에게 쥐어줌으로서 이 작품은 처음부터, 그렇게 존재하서는 안 되는 세계에 위치하게 된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지점에서 공감을 만들고 스토리를 움직여나간다. 주인공들을 끝까지 몰아세우는 스토리가 품고있는 주장이 다름아닌 '이런 잔혹한 세계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명제다. 그리고 키토 모히로 씨는 바로 그것을 배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을 나락에 떨어뜨림으로서 그리고 그걸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의 감정에 대놓고 호소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극단적일 정도까지 말이다. 이 정도면 잔혹하지 않아, 응? 어쨌거나 형식적으로 키토 모히로 씨 작품은 지극히 정상적인 스토리 만화라고 보여진다. 그저 내용적으로 좀 극단적인 내용을 취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키토 씨의 보쿠라노(지어스)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세계 멸망을 대문에 내걸고 있는데 이것 역시 '세계 멸망이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명제를 걸어놓고, 시소타기를 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세계 멸망이라는 죄의식과 그 죄의식에 대한 독자의 공감이 스토리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 멸망이라는 소재에서 맞닿아있는 건 차라리 밀크특공대 쪽인데, 이 작품 역시 에이리언9 만큼이나 만만치 않다. 이 작품에선 주인공인 하나가 속해있는 우주가 개미에 의해 멸망한다. 하지만 그런 건 이 작품에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침략이고(내 우주가 최고야), 누군가에게 계획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예정대로 +15 우주가 닫혔어요), 그리고 하나에게는 복수하고 싶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죄다 죽여버릴 거야!!). 이 작품에서 우주 멸망이라는 건 그냥 있을 수 있는 사건에 지나지 않아서, 거기에는 아무런 공감의 여지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죄의식? 공감? 그게 뭐지, 먹는 건가? 그런 건 이 분 작품하고는 백만광년은 먼 나라 얘기다.

키토 모히로 씨 작품이 잔혹하게 느껴지는 건 실제로 잔혹하기 때문이고 그 전제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면, 토미자와 히토시 씨 작품이 잔혹하게 느껴지는 건 오해이고, 그리고 모든 사건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점에 있다. 다르게 말해보자면 브레이크라는 게 없다. 그러니까 세계를 멸망시키는 데조차 말이다. 어떤 거리낌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일으키기 때문에 키토 모히로 씨 작품은 비극이었지만, 토미자와 히토시 씨 작품은 비극도 희극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곳은 기본적으로 비공감의 세계라는 거다. 특히나 에이리언9과 프로펠러 천국을 넘어서 에프터눈에서 연재된 밀크특공대 이후로 이 분의 작품은 다시 한 번 자기완결적인 면모를 공고히 한다. 실질적으로 모든 면에서 히젠야 쥬베보다 더 멀리 나아갔고 표현에서는 전성기에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스토리를 독자에게 전할 수 없다는 거의 같은 이유로 밀크특공대 이후 토미자와 히토시 씨는 독자로부터 멀어져갔다. 개인적으로 밀크특공대는 에이리언9 정도만큼 난해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유난히 난해하다는 평가만을 남기고 독자와의 다른 접점은 거의 전혀 낳지 못 했다. 유미하리 역시 실질적으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던 건 그러니까 이 분이 그리는 세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사람 정도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에이리언9의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이라는 것도 바로 그 깜찍하고도 끔찍한 상상력에 있었고, 에이리언9은 에이리언9의 세계뿐만 아니라 그 다음 작품들에 대한 입구역할도 겸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단지 입구는 좁아졌을 뿐이지, 없어진 게 아니다. 정말 상상력으로 승부를 본다는 점에서, 그걸 기대하고 이 분 작품을 기대하는 한 실망할 가능성이라는 건 별로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떤 방식으로건 독자와 교감할 수 있는 통로를 직접적으로 열었던 에이리언9은 분명 중요한 작품이고, 그리고 또 하나 에이리언9의 애니메이션은 이건 이것대로 마찬가지 맥락에서 그 통로를 더욱더 크게 열어제껴놨다. 그리고 프로펠러 천국이라는 작품이 있었고, 철저히 공감을 배제하면서 스토리를 밀어붙인 작품들인 밀크특공대가 있었고, 특무포효함 유미하리가 있었다. 근데 이것들도 그렇다고 3류라고 매도할 수 없는 게, 앞서 얘기했지만 토미자와 히토시 씨는 자신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표현을 기가 막히게 엮어낸 작가이기도 하고, 그것만으로 승부를 내는 정말 희소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게 쥬베에선 분명 실패했다. 하지만 그 이후엔 그렇지 않다. 공감의 여지가 없어서 실패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감할 수 없는 영역을 자유롭게 다루는 작가라는 거다. 인간적인 감정의 결여는, 토미자와 히토시 씨에겐 차라리 흉기나 다름없다. 아, 인기를 잃어버린 건 실패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얘기다. 스토리란 기본적으로 공감을 전제로 하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이렇게까지 작품을 그려나갈 수 있는 작가는, 그러니까 이 분 정도 밖에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말이다.
성년코믹은, 뭐 말그대로 에로만화를 얘기하는 거고 명칭은 일본에서 그렇게 쓰이니까, 빌려온 데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 만화만을 근거로 하는 얘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한국에서야 딱히 그런 장르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긴 한데, 오래된 사례로 느껴지긴 하지만 천국의 신화라거나 외설이냐 아니냐로 말도 많았고, 그 이후로도 딱히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일본에는 그런 시장이 있다. 그것도 만화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표지에 '성년코믹'이라는 딱지가 붙는다는 점에서 일반만화와는 격리된 느낌을 주기는 한다. 그래도 두 영역을 넘나들면서 활동하는 분들도 꽤나 알려져있고 최근에 좀 충격을 먹었던 예라면, 작안의 샤나 만화판의 작화를 맡으신 사사쿠라 아야토 씨도 성인만화가고, 다른 유명한 예라면 마호로 매틱으로 유명한 지타마 보우 씨도 성인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요새는 또 Kiss×sis라고 미묘한 작품을 연재하는 것 일반코믹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한국 기준에서 보자면 명백한 성인만화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뭐 어쨌거나 그런 작가들은 결코 적지 않고, 동인지 활동까지도 포함하면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두 만화 사이를 규정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저 성년코믹이 붙느냐 마느냐를 기준으로 달라지는 것은 분명 작품의 소재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선을 넘으면서 두 장르는 형식적으로 완전히 달라져버린다.

먼저 일반 코믹의 얘기인데, 이 경우 어떤 작가의 실질적인 데뷔라는 시점을 정의하는 것은 단순히 작품이 처음으로 어느 잡지에 실린 시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잡지에, 아니 그게 아무리 유명한 잡지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단편 한 작품 실렸다고 그 작가가 유명해진다거나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을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정말 그게 좋은 기회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러니까 실질적인 의미에서 데뷔라는 것은 처음 작품을 싣는 시점이 아니라, 연재를 가지는 시점으로 봐야할 것이다. 단순히 작품을 싣는다는 데서 연재를 가진다는 차이는, 무엇보다도 단편 작품이냐 장편 작품이냐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일반 만화에 있어서 단편 작품이라는 건 실제로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우도 별로 없고, 일종의 맛보기라고 말하는 게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단편이라는 장르가 무의미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한 작가로서 독자에게 인식되기 위해서는 장편이나, 혹은 연재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그릴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야 단행본도 나오는 거고, 이 잡지 저 잡지에서 간간히 단편 연재해봤자 그게 단행본 분량이 되려면 시간도 엄청 오래 걸리고 제대로 출판될지조차 사실 아무런 확증이 없다. 그러니까 단편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있는 잡지 다 구독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단행본은 언제 나올지 알 수도 없고 참 애가 타게 기다리곤 하는 거다. 한국에야 애써서 단편집이 출간되는 경우도 별로 없지만, 단편이란 실질적으로 그 정도 위상밖에는 없다.

어쨌거나 그런 사정에서 성년코믹의 경우는 사정이 180도 달라진다. 물론 대전제는 성년코믹 시장 자체가 마이너 하다는 걸 깔고 들어가지만 어쨌거나, 성년코믹의 대부분은 단편들이고 그리고 단행본은 거의 다 단편집이다. 비교적 길게 그려진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단행본 한 권 분량이 되지 않고, 아무리 길어도 몇 권 분량씩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른바 소년만화나 순정만화의 수십권씩 연재되는 경우야 그런 경우 자체를 또 하나의 특수한 경우로서 봐야하고 그런 경우와 비교할 필요야 없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경우를 무시하더라도 상당히 짧은 작품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그 유명한 이야기인 '포르노에는 스토리가 없다'라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지점에 해당하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는 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성년코믹에도 스토리가 없다. 실질적인 스토리가 없으니까 한 작품 한 작품이 매우 짧은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거다. 결국에 거기에 남는 건 그러니까 성행위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또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는 얘기가 된다.

단순히 형식면에서 일반만화의 단편과 성년코믹의 단편을 동질적으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사실 장르를 넘어서서 내용을 가지고 두 가지를 나눠본다고 한다면 분명히 이 두 단편이라는 형식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근데 이 때 말하는 내용이라는 것이 단순히 성행위만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그거야 뭐 일단 당연한 건데, 일반 만화에서 단편이라는 것은 사실 기본적으로는 장편 만화의 전개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기승전결이라고까지 거창하게 말할 건 없겠지만, 어쨌거나 어느 쪽이건 일반만화는 스토리를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나는 스토리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변화라고 생각한다. 기승전결이라는 표현도 분명히 그걸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라고 생각하고, 기본적으로는 물론 주인공들의 심리변화겠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그것은 분명히 독자의 심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원동력이고 따라서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무엇보다도 큰 힘은 바로 공감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만화는, 여느 픽션이 그래왔듯이 기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세계이고, 거기에 발맞춰 울고 웃고 감동도 받고 그럴 수 있는 장르라는 얘기다. 그것이 얼마나 독자에게 크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독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가지고 명작이냐 아니냐가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일반 만화에서 작품과 현실은 결코 단절된 세계가 아니다. 이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단서인데, 성년코믹에서 무엇보다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소재가 달라졌다는 것뿐만아니라, 그리고 장편만화와 단편만화의 비중과 중요성이 역전된다는 지점도 아니라, 바로 작품 세계가 현실과 단절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성년만화까지 갈 것도 없이 포르노 무비조차도 별로 현실적이지 않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거기서 다루는 카메라의 시선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시선이고, 소재적으로 이미 다른 세계라고 봐도 무방한 경우가 적지 않다. 세계 어딘가에는 그런 세계에서 사는 사람도 있나보다 싶기도 하지만, 그것이 만화로 넘어가게 되면 사정이 더 어려워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예를 들면 상당히 과격한 패러디 만화가 카네히라 모리히토 씨의 이야기,

그리고 범죄자 예비군에게 어드바이스!! 생판 모르는 초등학생 여자애가 너한테 '오빠(오니땅)'이라고 부를 리도 없고... 초경도 안 온 여자애가 기마위로 '기분 좋아(気持ちいいー)'라고 좋아할 리 없잖아!! 안타깝지만!!1


이것도 뭐 당연한 얘기지만, 이 어드바이스는 이중적인 세계관 위에 놓여있다. 하나는 물론 현실이고, 또 하나는 로리 만화를 겨냥한 거다. 요새야 성년코믹 시장에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게 어린 여자애를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른바 로리라는 소재인데, 정확히 이 두 세계를 비집고 들어가면 그러니까 저런 얘기가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저 얘기는 성인만화 세계 자체에 대한 쯧꼬미이기도 한 거다. 쯧꼬미란 일본의 만담 콤비가 한 쪽이 멍청한 소리를 하면(이걸 보케라고 한다) 거기에 대해서 '그럴 리가 없잖아!'하고 되받아치는 걸 말한다. 보케는 필살 쯧꼬미를 맞고 무대 뒤편으로 멀리 날라....... 갈 리 없잖아! 하는 느낌으로.

물론 만화니까, 장르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상의 세계니까 별로 그래도 상관없기는 하다 ㅡ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ㅡ. 어쨌거나 주목해야할 지점은 이미 이 지점에서 두 세계, 즉 성년만화의 세계와 현실은 타협의 지점을 잃어버렸다는 거다. 무슨 얘기냐면 성년코믹에는 공감할 수 있는 지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그걸 자기완결적이라거나 자폐적인 세계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세계. 그러니까 바로 그 지점에서 생각해보건데, 공감할 수 없는 세계에 스토리라는 걸 쓸 수 있겠냐는 거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스토리라는 건 심리변화가 전제되어있어야한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현실과의 세계를 완전히 단절시킴으로서 거기에 있는 모든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공감할 지점이 전혀 없어지게 되고, 따라서 스토리라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지점에 내몰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포르노에는 스토리가 필요없다. 물론 그것도 맞는 얘기지만, 이 경우 성년코믹은 스토리라는 걸 애시당초에 그릴 수 없다는 얘기도 된다. 거기에 스토리가 없는 건 필요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그릴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는 거다. 그리고 그렇듯 공감이라는 요소가 완전히 배제됨으로서 거기에는 순전히 응응하는 것만 남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성년코믹은 일반 만화와는 완전히 다르게 발전을 해나가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성년코믹이 자기완결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공유하고 있다는 한에서,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귀결된다.

그 하나가 그림이라는 표현수단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선 코마로 대표되는 만화의 표현법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지만, 무엇보다도 스토리를 전제하지 않은 가운데서 성행위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하는데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부을 수 있었다는 거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일반만화보다 성년코믹에서 기본적으로 요하는 그림 수준도 높다고 해도 무방하다. 일반만화계에는 그림을 별로 못 그리는 작가가 얼마든지 있다. 물론 그거야 어디까지나 만화가 수준에서 하는 얘기지, 일반인에게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만화의 신이라고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2가 뎃생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유명한 얘기고, 그리고 아무래도 스토리를 주무기로 싸우는 작가들의 경우는 그림 자체의 개성이나 수준보다는 연출이나 대사 훨씬 더 큰 무게를 두는 게 사실이다. 만화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문제는 일단 제쳐두더라도, 어쨌거나 성년코믹을 그리는 만화가들은 그런 의미에서 그림 자체에 대한 자유를 만끽하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게 안 되면,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타석에 들어서기도 전에 아웃이니 말이다.

두번째는 세계관 자체다. 어떤 성년만화건 기본적으로 자기완결적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고, 그렇다면 바로 다음에 할 일은 그 세계관 자체에 변주를 가하는 거다. 이것은 보통 소재라는 것으로서 드러나고, 예를 하나 들면 위에서 얘기했던 로리라는 것도 이러한 세계관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서는, 뭐 그게 그런 거다. 섹스로 대표되는 성년코믹에 대해서 사실 같은 범주에 넣는 게 조금 애매하다고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런 극단에 있는 세계가 아마 고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성년코믹은 인간을 섹스의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리는데, 이른바 고어라는 장르에서는 인간을 그냥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린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하는 거고, 그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가장 할 수 없는 혹은 해서는 안 되는 그런 것만을 인간이라는 대상에게 부과시키는 거다. 이 부분 역시 앞선 그림이라는 표현수단과 맞물려, 그것 자체에 전념하고 거기엔 별 이유도 없이 사람을 이러고 저러고 막 그러는 거다. 그러니까 거기에 별 이유같은 건, 그리고 목적도, 그런 건 애시당초에 없는 거고, 간단히 말해 표현 자체에 경도된 극단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에로와 고어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연관이 있어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아마 고어라는 장르는 이미 해부학이 일본에 유입되는 시점에서 거기에서 모티브를 빌린 그로테스크한 표현들이 등장했고 일찍이 에로와는 한 선을 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년코믹의 대부분을 단편이라고 얘기하기는 했지만, 물론 그것보다 긴 작품들이 없는 건 아니다. 장편이라고까지 말하긴 뭐하지만 적어도 대충 임시로 정의하건데 총 페이지 100p 이상에 3권 미만으로 중편이라고 할만한 작품들은 또 결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주목 받는 작품 중에 중편 작품이 들어가 있거나 하는 경우도 많아서 이건 이것대로 흥미롭다. 이야기가 늘어지는 대표적인 작가 중에 하나가 카미렌쟈쿠 산페이 씨인데, 아마 이 정도로 캐막장 만화는 찾아보기 힘들 거다. 이 작품은 위에서 이야기한 자기완결적인 세계관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내가 한 얘기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자기완결적인 세계에 스토리가 있을 수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왜냐면, 거기에 없는 건 공감이지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공감이 없는 스토리는 얼마든지 쓸 수 있고, 그럴 경우 그건 폐기물이 되던가, 그 아스트랄한 센스가 받아들여져 이런 작품이 되던가 둘 중 하나인 거다. 대체로 전자고, 후자에 있어서는 특히나 세계관 자체가 개그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작품일 거다. 그 외에 내가 몇 번이고 칭송했던 (야, 야...) 스에 히로가리 씨 작품도 흥미롭다. 이 분 작품에는, 기본적으로 스토리를 그릴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고 있다. 예를 들어 스에 히로가리 씨는 노출이라는 소재를 즐겨 쓰는 걸로 알고있는데, 처음부터 그 소재를 대놓고 이용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결론이 유예된 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무지막지 고민한다거나 한다. 그 지점에 최소한의 공감할 여지가 남아있고, 진짜 재미있는 건 이야기를 진행시켜가면서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변하고, 주인공의 심리상태에 따라서 세계 자체가 바뀌어버린다는 거다. 그렇게 도착한 세계도 또 하나 공감의 여지란 전혀 없는 세계지만, 이 작가가 시도하는 건 독자를 그 세계로 끌고들어가보려는 거다. 뭐니뭐니해도 일단 정말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그저 연출을 에스컬레이트시키기 위해서 장편 쓰는 작가 분도 있는 것 같고, 우지가 Y타 씨 같은 고어 작가의 경우는 사람을 유린함으로서 현실의 윤리 기준 자체를 유린하는 대표적인 경우이기도 하고, 또 마치다 히라쿠 씨는 일단 단편 작가이기는 한데 자신의 세계관 자체에 염세적인 입장을 가지면서 역설적으로 현실과 이어지는 부분을 가지기도 한다. 그런 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인데 일어나고 있다는 투로 작품을 그려나간다.

ㅡㅡ 험한 꼴은 다 당해놓고 '버릇이 될 것 같아'라고 말이죠. 아직도 그런 데다 컴퓨터로 색칠한 정도로 신선미를 내려고 하는 작가도 많다는 게 놀랄 일이죠. 에로를 무시하고 있죠.

마치다 : 실용적인 의미에서는 그건 그것대로 완벽한 에로만화입니다만, 단지 전, 당하고 나서 마지막에 '냐하❤ฺ'라고 하고 웃는 여자아이한테도 처음이라는 게 있을 건데, 그걸 생판 모르는 녀석이랑 해놓고 '에헤'하고 웃는 이 여자애를 보며 지금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나 에로만화가가 많은데, 좀 더 다른 결말을 생각해봐도 좋을 텐데 말이죠.

(중략)

ㅡㅡ 지금 마치다 씨는 만화팬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데, 소개하는 문구 중에는 부도덕한 부분이 무시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에로예요, 포르노예요, 라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제쳐버리는 거죠. 이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마치다 : 그런 것도 있죠. 이런 식으로 로리타 매니아가, 로리콘이, 인정받는다고 하면 그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리로콘이 소녀는 천사고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데는 신물이 나죠. '소녀의 몸은 아름다워요'라고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 움찔하죠. 입에 침바른 소리만 하는데, 하고싶은 것 뿐이잖아 하고 생각해요.

(중략)

―― 마치다 씨가 그리는 여자아이는 좀 두렵지 않나요?

마치다 : 무섭다고요?

ㅡㅡ 그렇게 당해놓고 '뭐 상관없나'하는 눈으로 쳐다보잖아요.
ㅡㅡ 맞아요. 소녀를 공격하면서도 공격당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요.

마치다 : 그건 제 자신이 로리콘이니까. 그런 내가 참고있으니까, 사회기준을 지키고 상식적으로 생활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도 참아라,고. 앞뒤 못 가리고 장난 치지 말라고, 부럽잖아,하고.

ㅡㅡ 그 강렬한 눈으로 못박아버리죠.

마치다 : 무섭다고 생각해주지 않으면 곤란한 거죠. 여자아이와 동시에 주변에서의 공격도 무섭다고 생각하주지 않으면. 본인들은 얼버부리려고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로리콘을) 깨끗한 말로 정당화하는 발언도 하지 않고 '입은 모든 원흉의 근원이니까 이 건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말고 입다물고, 조용히 있어. 단지 생각하면 그걸로 되잖아.'라고 생각하겠죠. 추리소설이든 트릭을 쓴 범죄를 다루는 작품은 사라지지 않겠죠. 그런데 로리타 작품들만은 살인보다 무겁게 다뤄지는 의미를 로리콘들은 생각해야봐야한다고 생각해요.

Quick Japan 22호 「마치다 히라쿠」를 「읽지마」!3


라거나,

가끔 신문에서, 랄가 그런 보도를 듣곤 하죠 「~10살 소녀가…」
귀를 막아버리고 싶은 기분이에요, 가능하다면 몰랐으면 하는 사건이에요, 제 상상에서만 일어나야하는 일이죠. 왜냐면 현실에서 실행하는 녀석이 있다니… 로리콘들에게 희망을 주잖아요. 저를 포함해서….
나는 꿈은 팔지만 희망은 절대로 팔고싶지않다.

마치다 히라쿠 '청공의 십삽회기' 해설(green-out 수록)


조금 인용이 길어졌는데, 솔직히.... 솔직히....

이거 보고 무지 웃었는데, 뭐 분명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이야기가 길어진다거나 스토리성이라는 건 성년코믹 자체와 상성이 별로 안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릴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뛰어난 작가라는 게 보장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그럴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작가의 역량과 개성을 보장한다.



으음, 그러니까 이런 글 쓰기 싫었다니까... 뭐 어쨌거나 예고했듯이 이건 다른 얘기를 하기 위한 전제이고, 본편은 또 시간 나는대로.
1 KANEHIRA-DEATH 180p
2 여담이지만
3 2차 출처 : yusurakinaco.blog92.fc2.com/blog-entry-1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