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원래부터 넓었다. 물론 지구에 60억명씩 바글바글하게 사람들이 살았던 적은 사상에 없었던 일이겠지만, 역사랑 세계의 크기란 별로 상관이 없다. 그런 것은 결국에 인간이 세계를 얼마만한 크기로 인식해왔느냐 하는 문제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와서 세계를 인식해야만 하는 영역이 넓어진 것 뿐이다. 세계는 원래 넓었고, 이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넓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한 개인의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넓은 세계에 맞물려있지만은 않다. 물론 오늘날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 바라거나 바라지 않거나 얼마나 글로벌한 삶을 살아가는지는 말할 것도 없는 문제다. 자신의 주위를 당장에 둘러보아도 그것들을 설명하는데는 너무나 많은 나라 이름을 대야할 것이다. 그것을 단순히 '한국'이라는 단어에 전부 구겨넣기에 현실은 너무 글로벌하다는 얘기다.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한 사람의 삶은 제한되어있다는 거다. 누군가가 자신의 손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절대량이 과연 얼마나 늘어났을지는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인식은 늘어났지만, 실제로 접하는 세계의 크기는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인식의 범주를 넓혔던 무언가가 있다는 얘긴데, 그 대표격에 해당하는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언론이다. 언론은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 일이고, 무엇이 사소한 일인지를 끊임없이 환기한다. 그리고 기준으로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세계를 그려나갈 수 있는 것이다. 본 적도 없는 장소, 그리고 갈 일도 없는, 본 적도 없는 사람들, 그리고 만나볼 일도 없는 사람들. 그렇듯 세계의 거대함을 가르쳐주는 일은 다름 아닌 언론이 행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것이 기만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단 하나의 질문이면 충분하다. 그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일까? 앞서서 말했지만, 개인이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 차원에서 세계라는 것이 오히려 정보량의 폭발과 그것에 관한 우선순위의 결정으로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갭을 가질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지금도 한창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을 주요 지상파 방송사들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리고 그 사건에 역사적이라는 수식으를 붙이기를 아무런 서스름없이 행하고 있지만, 그래서 그게 정말로 중요한 일인 걸까? 잘 모르겠어~

그것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역사적인' 매우 중요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 그 갭을 실질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이고, 당연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라기보다도 그 이야기와 어떻게 어울려 가느냐에 있는 셈이다. 그런 스킬을 현대인들은 가지고 있다.

도입이 길어졌는데 어쨌거나, 그렇기에 비로소 그 갭이 크게 휘두르며라는 작품을 재미있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8권, 그들의 경기가 끝나고 관련소식이 TV에서 중계되는데 나로서는 그 장면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 보도가 부여하는 의미는, 이 이야기도 어차피 내 손에는 닿지 않는 어딘가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 세계 범주에서 특별히 중요한 일은 아니라더도 말이다. 그저 스쳐나갈 뿐인, 중요한지 알 수 없는, 물리적 영향성은 전혀 없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어쨌거나 이 갭은 돌파되어야만 한다. 소년만화가 이 갭에 대해서 제시한 해결책은 단순하다. 바로 주인공의 손에 마을의 그리고 심지어는 세계 존속이 걸려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이 언론으로 다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ㅡ 나루타루 부근이 예외려나 ㅡ, 만약에 화제가 되기만 한다면 그것은 언론에서 하루종일 속보로 다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거대한 사건들에 다름 아니다. 물리적인 영향성을 만드는 거다. 그것은 언론에서 보도될만큼 중요하고 거대한 일인 동시에, 무엇보다도 그들의 실패는 곳 그 시청자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물론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 우리의 용자들은 결코 보도되지 않지만, 이것도 분명 하나의 타계책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거기서 독자들은 여전히 사건에 아무런 영향력조차 끼칠 수가 없어서, 이야기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변함 없지만 말이다. 내 목숨이 걸려있는데도 그것은 여전히 남의 일인 것이다. 오히려 더 서글프기까지 하다.

히구치 아사 씨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그려나가는 것 역시 사실은 그 타계책이다. 단지 방법이 전혀 다를 뿐이고 말이다. 앞서서 나는 현대인이 그런 역사적이면서도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야기들과 어울려가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소년만화에서는 사건의 크기만을 더욱더 비대화시켜서 이 스킬을 무마하려고 하지만, 이 작가 분은 그 빗겨나감 자체를 적극적으로 말리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나랑은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보면서, 마치 내 이야기처럼 느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마치 언론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을 붙들어매는 힘이라는 건 전혀 가지고 있지 못 하다. 좋다. 남북정상회담이 중요하다고 하자. 그런데 북한에 가서 노무현 대통령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무슨 얘기를 하고 무슨 선물을 하고 뭘 먹었는지가, 그런 일이 국민들에게 일일히 특보나 속보라는 미명하에 보고되어야할 만큼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웃기지 마라, 내가 아무리 멍청해도 그 정도는 분간할 줄 안다. 그런 건 일회성 라이브에 불과해서 어차피 며칠만 지나면 다시는 언급도 되지 않을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선언문이 앞으로도 자주 회자될 것과는 레벨이 다르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그런 가십거리 우려먹기를 절대로 그만두지 않는다. 왜냐면 그런 식으로 사람을 붙들어둘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도 마치 중요한 일처럼 착각을 하게 만드는 거다.

크게 휘두르며는 그런 것과는 철저하게 관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박한 작품들은 그렇게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은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까 일부에서는 '재미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마는 거다. 미하시는 재능이 있고, 주인공들이 시드 배정을 받은 학교와 대등하게 싸운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내부에서 그런 것이고 밖으로부터 찬사를 받을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미하시의 재능이 재능으로서 사람을 사로잡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한 소년의 재능이 팀은 물론 세계마저도 구한다, 뭐 그런 걸 하려고 했던 건 소년만화일 거고 말이다.

이 작품에 점으로서의 매력은 없다. 무언가 결정적인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때 이 작품의 매력이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랄까 그것이 분명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여기서, 잠깐 전작 '상냥한 나'의 후기 인용.

(중략)
이 이야기 전부터 전체상은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처음에는 후반 부분만을 만들어서 담당이신 카무R 씨에게 보여드렸습니다.
왜 전반부를 생략했냐면 야에 씨와 대면하는 것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만, 「편집장이 이거 전반부 그려보라 던데요.」라고, 생략해버린 걸 간파당해버렸습니다.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도 어쨌거나 그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충격을 체험하게 할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라는 생각에 그리게 되었습니다. 왠지 성격이 나쁜 걸까요. 뭐 상관없나......

그걸 노리고있기 때문에, 충격를 받은 사람에게 사과를 하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입니다만, 잡지 연재 중에 읽으신 분들께서 주역에게 열받아서 중도하차하시고, 어째선지 기분만 상하셨다면 제 역량 부족을 이 자리를 빌어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께서 이 글을 읽지는 않으시겠죠. 1
(중략)


나는 이 후기를 처음 봤을 때 상당히 의아하게 느껴졌었다. 그건 물론 야에라는 주인공의 위치가 관찰되는 대상으로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 틀리지 않다. 야에라는 주인공을 깊게 파고들려고 하면서도, 실제로 이 작품은 어느 지점에선가 야에라는 주인공 자체와 동일시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상냥한 나'라는 작품에서 야에에게 내 자신을 투영하면서도 이 작품에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다름 아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야에의 이야기라면 나는 오히려 별로 충격을 받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한 마디로 하자면, 그녀의 연인이었던 세리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결국에 '야에의 이야기'라는 설명으로는 종결지을 수 없었고, 그 지점에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충격이었고, 매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건 물론 개인사고 그다지 크게 휘두르며와 구도적으로 연결지으려는 시도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좀 더 후기의 내용에 있는데, 여기에서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이야기해나가고 싶은 건지 살짝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한 마디만을 뽑아본다면 역시 내가 받은 충격을 체험하게 할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라는 부분. 물론 크게 휘두르며로 넘어와서 그것이 전작과 같은 의미에서의 충격일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그 여운은 남아있는 셈이다.

시작으로부터 8권, 시합으로부터 4권. 월간 연재로는 정말 느긋한 페이스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2, 그들은 여느 야구만화에서나 목표가 되던 갑자원에 가자라거나 하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첫 경기부터 만난 강적. 우선은 이 경기를 이기자!

랄까 첫 경기부터 어지간한 위기에 노출되면서, 2회전 진출조차도 아슬아슬한 이야기다. 그런데, 거기에서 의문이지만 이 이야기에 있었던 건 정말로 야구 뿐이었을까?

야구가 이렇게 두근거리는 스포츠였다니!3


그거, 바로 그거. 사실은 별로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물론 이건 나에게 야구에 관한 별 팬심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전에 두근거려서는 안 되는 거다. 이건 시점의 문제인데, 저 문장이 독자의 입장인지 주인공들, 즉 선수의 입장인지를 잠깐 생각해봐야한다. 나는 '크게 휘두르며'라는 작품을 앞에 두고 있다면 저 문장이 충분히 주인공들의 입장에서도 이해될 수 있는 명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건 사실 용서될 수 없는 명제다. 그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게 없다면 성립할 수 있는 스포츠 같은 건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특히 프로의 세계에서 그것은 드러내서는 안 되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감정을 숨긴다기보다도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런데, 그런데 저 명제의 두근거림이라는 건, 곧장 휘둘림으로 연결되는 거다.

4이런 식으로 말이다.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는 것만으로도 미하시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 하고 그리고 기뻐한다. 보고있는 쪽까지 창피해지잖아!

그 대표격인 주인공이 미하시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뜬금없지만, 그러고 보면 이형종 선수도 울었던가. 마지막에 불편한 심경을 얼굴에 잔뜩 드러내면서도, 마지막까지 던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무너지는 모습은 사실 프로야구에서라면 그렇게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 http://keywui.chosun....i?media_id=V000046413

그가 감정에 완전히 휘둘렸던 건 분명 더 이상 체력이 없기에,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어쩔 수가 없는 거다. 이건 미하시가 9회말에 내가 이 회만 지키면, 우리가 이긴다고 생각했던 장면과도 연결해볼 수 있겠지만, 그 이전에 미하시에게는, 그렇게 휘둘리는 게 일상사인 셈이다. 이렇게 기쁜 일이, 보통인 건가.......5. 미하시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주위의 주인공들도 그런 미하시를 보면서 당황한다. 거기에서 또 한 번 그런 휘둘림이 드러나게 되는 셈이다. 그게 아마도 여기에만 있는 이야기고, 이 작품에서 드러내는 '두근거리는 스포츠'의 진정한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두근거림은 근본적으로 시청자로서나 팬으로서나 프로야구를 보면서 느낄 두근거림과는 분명히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시점차라고 해야하려나, 분명 그 지점에서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이 선수들이, 이 게임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작가 분은 아마 말하지 않을 거다. 실제로 수많은 예선 1차전 경기 중 하나일뿐이고, 정말 중요한 건 이 이야기의 핵심이 결코 '그들의 활약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을 강하게 어필하면 어필할 수록 그려나가고 싶은 것과는 멀어져버리는 게 아닐까? 미하시가 첫 경기에서 퍼펙트 게임으로 작년 시드교를 잡아버렸다거나 한다면, 완전히 이야기가 안 된다는 거다. 그걸론 안 된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뻗어나간 이 접전이라는 건 진부하기는커녕 정말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나에게 강렬하고도, 소박한 이 접전은 독자가 이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느끼지 않게 하겠다는 작가의 의지처럼 느껴졌다.

충격을 체험하게 하겠다는 건, 야에의 이야기에서도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야구는 소재이자 매개체로서 그 치열함을 전작보다는, 아니 전작보다야 훨씬 긍정적인 의미에서 체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내가 아마 야구장에 가더라도 절대로 이런 느낌을 받지 못 했을 거라는 게6, 나에게 있어서 '크게 휘두르며'의 가장 큰 기쁨이었던 셈이다. 이 이야기는 중요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소중하다고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1 상냥한 나(캠퍼스연애공식) 2권 후기
2 연재량은 압도적으로 많다. 한 권 분량이 고작 3~4개월 연재분이니...;
3 크게 휘두르며 6권 뒷표지
4 5권 130p
5 8권 211p
6 물론 이건 이야기가 야구라는 소재를 배신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아마 거기에서 또 다른 재미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상냥한 나(캠퍼스 연애 공식)'에서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었기 때문에, 아직도 히구치 아사 씨의 작품은 보기가 꺼려지곤 했는데, 우울한 기분과 함께 6권까지 완독했습니다.

이제와서 깨달은 바입니다만, 이 분 순전히 뛰어난 작가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냥한 나' 고유의 그 조금은 침울한 매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흡입력을 가진 이야기를 만나는 경우는 그렇게 자주있는 일이지만은 아니니까요.

확실히 주인공들의 하나하나 행동에 반응하게 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케릭터성이랄까요, 아마 그런 부분이 동인 취향을 건드리는 걸지도 모르겠죠. 생각하는 것 하나하나 행동하나는 것 하나하나 반응하는 것 하나하나, 이런 매력을 이끌어내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도 그렇습니다, 평범한 상황에서조차 그런 포인트를 짚어내곤 하니까요. 따로 특정 상황을 언급 할 것도 없이, 이야기 내내 그런 긴장감을 감돌게 한다는 건 역시 대단한 일이죠. 서툴면서도, 지나치게 솔직한, 이런 부분은 변함없이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자학적인 맥락에서 말하자면, 시무라 타카코 씨의 작품 이상으로 매력적인 분위기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단연 압권은 이야기겠죠. 지금까지 작품과는 가장 다른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연작도 아니고 정말 착실한 장편 작품이라, 특히 5권부터는 정말 놀랐습니다. 2권 통째로 니시우라 고교의 첫 시합을 그려내고도 아직도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게, 무리는 없고, 설득력은 있고, 재미도 있는 그런 느낌입니다. 이게 성공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은, 딴 거 다 제쳐둬도 성공이 아닐까 합니다. 실질적인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부근이 실패했다면 결코 좋은 평가는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여기서 처음, 이 작품은 야구 만화가 되는 셈이니까요. 감동 받았습니다 ㅠ_ㅠ...
Comments
2007-08-25 00:15
그냥 순수하게 야구 매니아적인 입장에서 보기에도 상당히 재미있는 만화입니다.
http://grard.egloos.com/3297150
주간 베이스볼 인터뷰인데 한 번 보시는 것도 괜찮으실 것 같습니다.
야구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팍팍 느껴지죠.
2007-08-25 22:38
그러고 보니, 블랙잭 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제 자신이 야구팬은 아니다보니, 그래도 확실히 야구 좋아한다는 느낌은 많이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가벼운 성격이라 막상 아아 \'야구라도 해볼걸!\' 하는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생활범주 내에서 야구장 구경할 일조차 없었지만요.

추천을 받아서 보게되었는데,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뭐랄까요, 몇 번인가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저는 원작자가 따로 있는 작품은 별로 안 좋아합니다. 왠지 허공에 붕 뜬 느낌이랄까요, 물론 몇몇 작품이 그렇다고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의외로 그런 인상을 주는 작품이 많았으니까요. 그나마 나았던 스토리 작품이라면 마법사에게 소중한 것 정도입니다만, 거기에도 어느 정도의 매끈함은 남아있었으니까요.

이 작품이 거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그 타협점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원작 작품에 개그 만화라니, 이거야 뭐 놀라고 재미있을 따름이죠. 실제로 원작자 분도 작가라기보다는 만화가에 가까우신 것 같더군요. 개그도 착착 감기고 케릭터들도 매력적이고, 스토리.... 를 내던져버린 건 아닙니다만, 오히려 땅에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서 공중보행을 해나가기에 비로소 재미있는 거라고 할 수 있겠죠. 내달리는, 고등학교 검도부를 다루고 있는 작품인데, 재미있네요.

랄까, 검도가 하고싶어졌..... 쿨럭. 유쾌해서 좋네요. 왠지 어려진 기분이 됐습니다.

그건 그렇고, 1권은 번역서 원서 다 보게됐는데 번역서에는 속표지가 빠졌더군요. 겉표지 그림의 러프가 들어가는 거 같은데, 조금 아쉬웠습니다. 뭐, 넣어야할 의무가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속표지 싫어할 사람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 넘어오면서 오리지널로 표지 디자인을 새로 하는 경우도 드문 걸 생각하면, 속표지 빼먹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도 좀 의아합니다. 쿠단시 같이 수위가 있는 경우라면, 뭐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요.1 그렇지 않은 경우는, 좀 아쉽군요.
1 1권의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