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ic Cue 이후 오랫동안 기다려온 감수성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다름 아닌 카와카미 쥰코 씨의 작품입니다. 오랜 지연을 거쳐 이제와서야 그 감수성에 흠뻑 젖어볼 수 있었습니다. Cue에서는 8p 정도의 짧은 단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말 그대 그대로라는 게 참 묘한 인상이었습니다.

그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해야할까요. 제가 알기론 이 분의 활약 무대도 그렇고 작풍도 기본적으로는 레이디스라고 불리는 장르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이야기 안에서 그려나가는 이야기는 성에 관한 주제보다는 좀 더 약하고 어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좀 더 소년소녀의 이야기이고, 클럽 허리케인 ADVENTURE라는 작품의 주인공은 고작 13살밖에 안 되죠. 그 작품 얘기를 조금 더 해보면, 부모에게 돌아온다는 약속과 함께 '이상한 학교'로 떠맡겨지게된 쌍둥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게된 누나 로즈와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남동생 앤드류. 이야기는 앤드류를 중심으로 흘러나갑니다. 아마 주목할 점은 다름 아닌 앤드류가 아직까지 어린애라는 점이겠죠. 이 곳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하며, 로즈가 말을 안 하는 걸 안타깝게 여기고 지켜주고 싶다고 하면서, 여전히 부모를 기다리고 있는 소년. 그리고 소년은 우연한 기회에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게 되고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앤드류가 앞서 이야기했던 어린애라는 특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그가 어른이 되어간다는 거겠죠. 그런 의미에서는 성장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작품도 결코 그것을 소위 말하는 좋고 좋은 의미에서 끌고 가지는 않습니다.

특히 얽히고 섥혀있는 것처럼 보이던 실타래가 로즈가 입을 열면서 풀리게 되고, 이 이야기가 나아가는 결말은 뭐랄까요. 거기에 있는 건 사건도 감동도 비극도 아니고 그저 씁쓸하게 느껴지는, 방향성은 다르겠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작품에서 마지막에 조제가 혼자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볼 때 느꼈던 그런 복받쳐오름과 같았습니다. 결말은 이야기의 전체 인상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라고 합니다만, 결말 아닌 결말을 짚어내는 것 저는 그런 작가들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결말이 아닌 게 아니라, 오히려 훌륭하게 완결되어있죠. 이 분도 하나, 그게 가능한 만화가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작품의 주인공은 레즈비언입니다. 하지만 그건뿐이었습니다. 분명 레즈비언이 나옵니다만 여기에는 '레즈비언이니까'라는 게 없었다는 이야기. 레즈비언이니까 사회에 차별을 당하는 것도, 레즈비언이니까 여자를 사랑하는 것도 아닌. 결과적으로는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그렇듯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긴 합니다만, 차별이나 편견 같은 걸로 외부에서 이야기를 침입해오는 부분은 거의 없이 그렇다고 일상을 벗어난 장소에서 펼쳐지는 판타지도 아닌 게 주목할 점.

예를 들면 성인이 되는 문제랄까요.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는 건 무언가가 '분명히 변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만, 그건 어느날 갑자기라기보다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두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변해가는 일일테니까요. 어른이니까 오늘부터는 술을 마실 거야, 어른이니까 오늘부터는 담배를 필 거야, 라던가 아니, 뭐 그래도 상관없지만 진지하게 생각하자면 분명 우스운 얘기죠. 물론 일부 법으로 정해진 직접적으로 '어른이니까' 어쩌고저쩌고한 영향을끼치는 것도 있겠지만 삶 속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구도로 그려낼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거죠. 커밍아웃에서 이야기가 시작 되는 건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여기에는 그런 '이니까', 즉 '레즈비언이니까'라는 게 주인공에 방향에서건, 이야기의 방향에서건 거의 배제되어 있다는 겁니다(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듯 너무 쉽게 진행 되는 이야기에 깜작 놀랐습니다만, 오히려 이런 감각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주인공은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만화가 지망생이라거나 집에서 뛰쳐나와 다른 데 얹혀살고(?) 있다는 정도가 특이하다면 특이합니다만, 그냥 평범하고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우연히도 시작 되는 사랑. 어긋나는 마음과 피할 수 없는 감정. 거기에는 그림만큼이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녀들의 러브 스토리가 있을뿐이더군요.
이 쪽은 소위 레이디스 코믹이라고 불리는 영역, 아마도. 성인 만화는 아닙니다만, 좀 더 현실적인 차원에서(이게 현실인지는 떠나서) 그런 사안들을 훨신 거침없이 그려냅니다. 연애라는 걸 기반으로 키스야 정말 가볍게 나오는 듯 하고, 섹스, 일탈, 바람을 핀다거나 하는 표현. 거기에 도덕적 잣대를 대는 것도 없이, 그냥 바람을 폈다 이런 식으로 끝나버리는 단편의 연속.

개인적으로는 그런 담백한 감각은 꽤나 좋아합니다. 반대로 소년만화의 경우 케릭터로 승부를 봅니다. 그러니까 독자 입장에선 케릭터 자체에 대한 애정이랄까요, 그런 부분이 있다는 거죠. 집착이라는 것과는 또 다름이나만, 그걸 독자와 케릭터 간의 끈적한 관계라고 한다면, 이 쪽의 경우는 그런 게 별로 없습니다. 윤리적으로 이런 작품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로 치부하더라도, 이야기 속에서 혹시 공감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짧은 단편을 보는 동안 그 케릭터를 좋아지는 일은 별로 없다는 거죠. 이런 부분은 단편 작품의 특성이기도 합니다만, 그 소재로서 처음에 말한 것들을 이용한다는 게 매력적인 거죠. 그런 소재들이 담백하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것, 그런 점이 좋았습니다.

하나 덧붙여두면, 전 4권으로 구성된 Just Lovers는 일본에서 한 권으로 나온 듯합니다. 4권이 묶여서 한 권으로 나왔다는 건 아니고, 다 따로따로 나왔다는 얘기. 세주판에는 1권 외에 차례로 '체리에게 맡겨줘!', '러브 스토리즈', '연애대백과'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는데, 각각 그 소제목으로 출간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