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을 정말 싫어한다. 반미나 그런 게 아니라, 미국이라는 문화 자체를.


어제 일기에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거기에 조금 보태는 이야기. 최근에 본 미국드라마 두 작품은 하우스(x1)와 보스턴 리갈(x1)이었는데 이 두 작품은 거의 마찬가지 맥락에서 엄청난 오해를 작품 안에 드리우고 있다. 그게 바로 '영웅'이다.

이 작품들은 매우 전략적으로 영웅을 제시한다. 물론 보스턴 리갈에서라면 앨런 쇼어와 데니크레인이고 하우스에서라면 하우스다. 영웅은 결코 평범한 법이 없다. 그리고 그들이 정확히 그렇다. 두 작품에서는 아주 정확히 그런 비범함을 부각시킨다. 어딘가 비뚤어져있고, 조직에는 전혀 봉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그들의 상사들은 그들을 인정하면서도 골치거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그 자리에 잡아두고 있는 것은, 특히나 로펌 변호사라거나 의사라거나 하는 미국이나 (그리고 한국에서나) 상당히 잘나가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 그들은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들은 천재인 거다.

천재와 조직 사이에서, 능력이 크면 클수록 조직 안에서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범위는 커진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그런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묘기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짜르고 싶다면 짤라봐라. 그렇게 똥배짱을 부리는 거다. 그것이 그들이 품고있는 첫번째 비범함이다. 천재라는 것, 그리고 따라서 제멋대로 군다는 것. 이런 건 앨런 쇼어의 멎진 변론이라거나 하우스가 병을 추적하는 내용적인 묘사로도 그려지지만 물론 그런 건 내용 그자체로서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주장은 그들이 천재라는 거고, 그런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은 이야기 자체인 동시에 주장의 근거 역할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우스의 첫번째 에피소드가 촌충라는 기생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반드시 그 이야기가 있어야할 어떤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는 거다. 작품에서 다뤄지는 모든 질병들은 다뤄지지 않았던 다른 질병들로 대체될 수 있다는 거고, 그것이 의학적으로 얼마나 타당한지 또한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물론 이건 픽션의 필연적인 특성이고 그것 자체가 나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건 그런 상황을 통해서 주인공들의 천재성을 밀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천재다. 그리고 그들의 천재성을 밀어주면 밀어줄 수록, 그들은 매력적이면서도 격리되어져만 간다. 사람들은 그들의 비범함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이 한 편 한 편이 자기완결적인 에피소드이면서도, 그런데 유일하게 장편적인 스토리로서 건드리고 있는 게 바로 그 점이다. 그렇듯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참 끈질기게 물고넘어진 게 있는데 그게 바로 그 천재(주인공)들의 인간성에 해당한다. 슈미트 이사가 앨런 쇼어에게 범인도 아닌 사람의 팔을 부러뜨린 경찰을 변호하라고 했을 때, 앨런 쇼어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앨런은 이 사건을 받아들이기를 엄청꺼려한다. 하우스에서였다면 병원에 새로운 보글러 이사와의 대결이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것들은 하나의 고비에 해당하지 앞서 말했듯이 두 드라마는 이렇듯 그들의 이런 고뇌를 알게 모르게 집요하게 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정답을 물고온 제비는 하우스의 카메론이었다.

You're abrasive and rude, but I figured everything you do, you do it to help people. But I was wrong. You do it because it's right.

전 선생님이 하시는 일이 모두 사람들을 돕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틀렸나봐요. 선생님은 그게 옳기 때문에 하신 거예요. (from 1시즌 17화)


여기서 전자는 다분히 기회주의적이다. 필요하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 할 수만 있었다면 아부성 강연으로 자신의 직속직원을 보호해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우스는 그러지 않았고, 그러기는커녕 사태는 극단적으로 악화된다. 급기야 이사회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던 윌슨까지도 잘리는 상황에 치닫고, 윌슨 역시 마찬가지 이야기를 한다.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하우스는 또 그렇게 행동할 거라고 말이다. 하우스는 누군가를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동료라고 할지라도 친구라고 할지라도 그 무엇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카메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바로 그 점에서 그렇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얘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픽션에서라면 얼마든지 정의는 승리한다. 우습지만 하우스의 승리는 용자물에서 용자들이 승리하는 것과 구조적으로는 별로 다를 것도 없다. 자본을 상징하는 보글러 이사를 멋지게 물리침으로서 그는 졸지에 윤리 그 자체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게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두번째 비범함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확히 이 두번째 비범함이 첫번째 비범함에 대한 명분이 되어주는 셈이다. 그들은 외골수고, 제멋대로고 별 수 없는 인간이다. 그들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드라마는 거기에 대해서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거다. 우리는 그래야만 한다. 왜냐면 그들이 타협하지 않는 건 누군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고립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것을 보고 있는 누구라도 마땅히 지켜야할 그런 윤리에 대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고립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순한 천재가 아니다. 불의에 투쟁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그러한 윤리를 지켜온 존경받아 마땅한, 그리고 승리해야할 영웅인 셈이다. 윤리라는 이상주의와 그러한 윤리를 밀고나갈 재능을 결부시켰는데, 그게 영웅이 아니면 도대체 또 누가 영웅일 수 있단 말인가?

영웅도 현실에선 이렇게 고생하며 살고있다. 아니, 영웅이기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면서 살고있다. 그것이 미국드라마스러운 리얼리티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모습이 한 마디로 유치하다. 일본드라마가 유치하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일본드라마가 유치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표현의 문제지 이야기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일견 쿨한 것 같아보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쿨하기는커녕, 쿨한 척의 극치인 셈이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할 정도로 유치할 수 있는 거지? 이전부터 계속 얘기했지만, 난 이상주의가 정말 싫다. 이상주의에 대한 전제 자체가 너무 싫은데 그걸 정말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게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다. 한국에도 이상주의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대부분 미국에서 온 거라고 확신한다. 도대체 한국 사람에게 흑인 문제라거나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거의 아무런 의미도 없다. 무슨 말이냐면 그런데도 우리는 흑인과 백인의 갈등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 감수성을 가지고 태어났을리는 만무하다. 분명 어딘가에서 배워온 거다. 그러니까 이들 드라마에서 간간히 그런 갈등을 다루더라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는 거고 말이다. 미국이 그 출처라고 한다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더 심하지 덜 하지는 않을 텐데 어쨌거나 이런 작품들은 그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전에도 얘기했지만, 보스턴 리갈은 미국 TV 윤리교과서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하도 윤리 공부를 안 해서 미국 윤리위원회가 TV로 윤리를 교육시키자고 만든 드라마라면 사정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아, 그렇지.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들의 인생을 연표로 이야기한다면 확실히 천재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을 문장으로 이야기한다면 그 반대의 극한입니다. 많은 '천재'들은 가족이나 친구나 연인들과의 인간관계에 실패했으며, 동업자에 대한 경쟁의식과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심히 고독하면서도 그런 주제에 자존심만 세서 성격은 나쁘고, 돈쓰는 법도 모르고, 제멋대로에 능글맞고, 독선적이고, 행복과도 인연이 없습니다. 하긴, 재능과 성격은 전혀 관계가 없으며, 천재와 성인은 동등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요. 재능은 노력을 게을리 하게 만든다고 하죠. 아니, 그보다는 그냥 까놓고 말해서, 나는 재능만으로 인생을 헤쳐 나온 녀석들에게 뭘 기대했던 거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중략)1
1 사이코 로지컬 상권 후기 300p~301p
     • Music Fighter 080418. 3분이면 알 수 있는 모닝구 무스메의 역사.

미치시게 사유미가 재미있다. 특히 마지막 한 마디가. 그건 그렇고 난 진짜 연예인이나 성우의 말이 너무 좋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연예인의 사투리라고 해야하려나. 절대로 사투리 자체가 좋다는 건 아니다. 미츠이 아이카의 관서 사투리야 (오타쿠에게는) 대체로 친숙할 거라고 생각하고, 타나카 레이나의 말 끝에 '켄'을 붙이는 말투는 후쿠오카 사투리(정확히는 하카타벤)인데 이 억양이 또 묘하게 매력적이다. 신령사냥의 미야코의 대사 하나하나는 정말 가슴을 후벼팠는데, 어쨌거나 그 작품 이후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사투리가 되었다. 일본인은 아니지만 쥰쥰이나 린린의 말투도 재미있고. 쥰쥰은 가끔은 입 다물고 있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어쨌거나 대체로 재미있다. 린린은 뭐랄까 정말 딱 아니메에서 중국인의 일본어 발음이라는 느낌.

거기에 더해서 '일본어로 노래하고 싶다는 소녀도 있고...



그래도 2차원보다는 3차원이 낫지 않을까? 뭐 어느 쪽이건 오타쿠라고 불리지만.



그러고 보면 친척 동생 하나가 SM엔터테이먼트의 오디션을 봤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여태껏 왜 하필 SM인지 고민해왔는데 찾아보니 사람 이름이었다. 흐음... 어쨌거나 이 녀석 좀 무섭다. 아마 나보다 열 살은 어린 것 같은데 ㅡ 정확히는 모르겠다 ㅡ 학교 성적은 항상 톱에 초딩 때는 남자애들 잡고 다녔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에 충격을 먹은 일이 있었던 게, 어른들 술자리에 껴서 작은 아빠가 ㅡ 그러니까 친척 동생의 아빠 ㅡ 먼저 들어가야겠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이 왜 벌써 가냐니까, 이 꼬꼬마 왈 자기는 상관없으니까 자기 핑계대지 말라고 했다 oTL.

나야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10년 전에야 의심의 여지없이 저런 상황이라면 엄마한테 언제 집에가냐고 계속 물어봤을 텐데 말이다. 아마 보통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걸..... 인간성의 차이라고 하는 거구나 뼈져리게 느끼고 왔다. 뭐 하나 잘난 게 없는 나지만, 그렇다고 이겼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그래도 10년 전부터 집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은 결코 뒤지지 않았으니까.

그 얘기가 하고 싶었다.



보스턴 리갈 시즌 1 끝. 뒤로 갈수록 앨런 쇼어와 데니 크레인이 중심이 된 것 같은데, 기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좋다, 내 영어 이름을 짓는다면 포크레인이라고 짓고싶어졌을 정도로 재미는 있었지만, 초반에 정말 기대했던 로리 콜슨이 중심에서 멀어진 건 정말 아쉬웠다. 샐리 힙은 왜 짤렸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야 한 마디로 정리하면 'TV 미국 윤리 교과서'라는 느낌.



이렇게 미국드라마라거나, 아니면 일본드라마를 보고있으면 한국드라마가 100% 의식적으로 '한'이라는 소재를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야 기억상실이나 자식 잃어버리고 찾는 건 아예 하나의 장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니 말이다. 부모에 대한 추억(자신의 불효)이라거나 장례식이라거나 이런 것도 공감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한일 거고, 고아 같은 소재도 그렇다. 더 재미있는 건 이런 주제에서 벗어난 작품이 거의 없다는 거고 말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확실히 미국이나 일본드라마가 이런 감각을 흉내낼 수는 절대 없다.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을 거고. 개인적으론 '한'이라는 주제보다도 그 나른함이 사랑스럽기는 하다. 그리고 아마 그렇기 때문에 인기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정말 아무생각없이 멀뚱멀뚱 앉아있으면 일주일의 피로가 풀리는,

반면에 미국 드라마는 몰아보기 좋은 것 같다. 일본 드라마는......... 유치뽕짝.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보다는, 무엇을 하고싶은지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나는 여전히 수험생이다. (...)
Category: 영상 Date: 2008-04-09 04:11
홍국영 x 1 이산 x 2 드라마 x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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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왕후와의 신경전이 재미있어서 읽어버렸는데,

지못미, 홍국영 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