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쁜, 기분 나쁘고, 기분 나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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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노 이니오 씨는 대단하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소라닌에서도 그렇고, 특히 빛의 마을이나 이 작품에서는 정말로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나가고 있다는 감각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감동적이지는 않을지언정' 분명 감탄을 하게되는 것은 사실이다. 아, 대단하다...

나는 기분 나쁜 이야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왜냐면 사실 세상은 기분 나쁜 것을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만화에 대해서, 만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의무를 부과했지만, 그런 것은 다 뻘소리다. 재미없는 만화, 아니다 적어도 그 의무론에서의 재미와는 전혀 관계없는 재미도 있는 법이다 ㅡ 도대체 누가 재미를 정하는가? ㅡ. 그런 작품들이니까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런 작품에 좀 더 끌리는 편이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그리는 작가 중에서도 아사노 이니오 씨는 분명 뛰어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이런 작가는 드물기도 하고, 주목받을만 하다고 생각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도 일단 재미있는 작품인데, 조각조각난 이야기들이 차근차근 진상을 드러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사실은, 일말의 진살도 없는 진상을, 드러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치 지팡이가 중력에 의해서 쓰려져버리듯, 이야기는 끝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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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세상은 주인공들에게 상처만을 남겼고, 그리고 이 이야기에 관계된 사람들은 전부 죽거나 미쳐버렸다. 아니면, 미쳐있었거나. 이 엉망진창인 세계는 바라보는 것만으로서 숨이 벅차오른다. 답답하다. 여기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다.

그런 느낌. 어떻게 생각하면 이 작품이야 말로 이상주의에 제대로 오염당한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악이라는 것은 오직 이상에 대해서만 그렇다. 올바르게 존재해야할 모습이 이상이며, 그것을 배신하는 것이 곧 악인 셈이다. 이상주의는 그 구도를 밀고나가는 태도이다. 세상은 이상적이어야만 한다. 모든 악은 용인 받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의무와 단죄, 그것이 이상주의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이상에 대한 정반대의 세계를 그려나간다. 이상을 그 자체로 배신하는 악으로만 가득 찬 세계이다. 악의조차도 없는, 그 세계 그 자체가 악인 것이다. 이상주의가 절대로 용인하지 못 할 바로 그 세계를 말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이 세계가 아닌 것이 이상이다.

가족은 행복하게 살아야 하며, 지나가던 소녀를 강간해서도 안 되고 ㅡ 성욕따위는 차라리 없는 게 낫고 ㅡ, 누군가를 죽이지도 말아야 하며, 선생님은 누군가를 미워해서는 안 되며 ㅡ 그들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이어야 하며 ㅡ, 친구들은 모두들 친하게 지내야 하는 세계. 한 마디로 세계는 이상적이어야만 한다. 이 작품은 이상에 대한 가장 강렬한 배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뒤집어서 바라보면 이상에 대한 가장 강렬한 환기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 작품엔 삶이 없다. 비극이 있을 뿐이다. 마치 왕따를 당하다 우물에 떠밀려 평생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키무라 아리에처럼 말이다. 더 나아질 방법도, 더 나아지기 위한 발버둥도 없다. 물론 여기서 더 나아진다는 것이 이상에 대한 열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이야 말로 이상에 대한 열망 그 자체인 셈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되서 어디서 끝나는지조차 가리키고 있지 않다. 마치 도돌이표와도 같은 결말과 '강한 의지를 가져라'라는 한 마디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만약 그것이 정말로 도돌이표라고 한다면,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마지막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주인공들의 운명을 주인공보다 앞서서 바라본 것이고, 이 작품은 정말로 아무런 구원의 여지가 없는 비극에 다름 아닌 것이다.

비극에는 원래 구원이 없다. 물론 그렇기에 비로소 비극인 셈이고, 만약에 그것을 배신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비극이라고 불리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극이 곧 삶에 대한 부정을 담지하라는 것은 아니다. 아니다, 차라리 삶에 대한 부정조차도 없다. 모든 것이 운명과도 같이 주인공을 빗겨나가며 주인공은 그저 그 운명에 내던져진 희생양에 불과한 것이다. 세계는 이상적이지 않다. 그럴지도 모른다. 근데 이 안에서 세계는 차라리 이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띄고 있는 괴물인 것이다.

     • 이 상자의 안에는, 어떤 소원이라도 한번만은 들어주는 마법이 들어있다.




지금이라면 나는

세계를 끝내버리는 것조차 가능하다.(229p)

주인공 아마히코는, 그렇게 말하고 그 상자를 연다. 물론 이 젠장할 세계는 그런 (아마도 멸망에 대한) 실락같은 희망조차도 허락하지 않은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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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상력은 이상에 대한 (이상에 대한) 열망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서 이 작품이야 말로 이상에 대한 열망이라고 이야기한 거고. 뭐랄까, 이 작품은 암울한 세계상이라기보다는 암울한 운명밖에는 남지않은 ㅡ 이상이 완전히 부재한 ㅡ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그것뿐인, 비로소 주인공은 그저 장식품일 따름이고 말이다. 차라리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 비극, 운명인 셈이다. 그게 이 작품이 기분나쁜 가장 큰 원동력인 셈이고 말이다.

재미없었다는 건 아니다. 시도적으로 워낙 재미있기도 하고, 그걸 그려내는 과정에서 즐길 수 있는 재미야 주목할만하다. 영화처럼 받아들인다면 훨씬 더 순전히 재미있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기분은 나쁘지만. 아, 그러고 보면 이 분, 츠게 요시하루 씨 작품을 좋아하신다 했던가.

뭐,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진 말아야지. 머리만 아프다. 솔직히 이 작가 분과는 어디서 접점을 찾아야할지를 잘 모르겠다. 소라닌도 그렇고 빛의 마을도 그렇고, 뭔가 있을 것 같으면서도 잘 보이지 않는, 그런 작품들. 좋아한다는 건 분명 접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취향인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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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언젠가 애니북스에서 아사노 이니오 씨 작품을 출판 예정으로 잡아놨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아직 '멋진 세계'라는 작품이 남아있으니 나오면 그거라도 보면서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소라닌 영화도 기대되고 +_+
어느 날 우연히 교통사고를 목격한 주인공 앞에는 거대한 쥐가 나타나는데, 그 쥐에게 감염된 주인공에게 이상 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만, 그 현장에서 접근했던 수상한 의사에게 휘둘리게 되는 주인공은 급기야 그 감염]체는 좀비가 되서 사람을 덮친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되고, 의사에게 설득 당해 그들을 처치하는 일을 돕게된다는 이야기.

문득 눈 앞을 스쳐지나간 그 이름은, 'Shinsyu Ueda', 순간 움찔했습니다. 좋아하냐고 한다면 머리 속에서 크게 정리된 바가 없는데다 바로크라는 작품이 상당히 몽환적인 작품이라 어떻게 평가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기에 그저 보류중이었는데, 적어도 하나 확실한 건 한국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런 이유로 상당히 반가웠습니다. 1권은 프롤로그격이기에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습니다만, 독특하다는 것과는 달리 여전히 몽환적이면서도 생기없는 분위기에 묘한 흡입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Battle Royale이라고 하는, 간단히 얘기해서 '친구'들을 전쟁터에 몰아두고 서로 죽이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라는 가정극. 사실 저는 배틀로얄이라는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얘기를 했었습니다만, 배틀로얄 자체는 '가정극'이 가진 가능성을 전혀 끌어내지 못 하고, 순전히 '잔혹한 액션'이라는 장르로 흘러가 버린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원작을 보지 못 했기에 섣불리 작품 전체를 놓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만화와 영화로 본 배틀로얄은 결국에 '그들은 왜?'라는 질문을 철저히 외면한채 이야기를 진행 시켜버렸으니까요.

그 작품의 2로 나온 게 바로 이 블리츠로얄, '육군'의 배틀로얄이라는 프로그램을 다룬 전작을 원안으로 해서 '해군'의 '블리츠 로얄'이라는 프로그램을 그려내는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의 경우는 '전투'보다는 훨씬 더 '군대'라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프로그램에 선택 된 아이들이 도착한 곳의 군함섬의 전수방위학교. 아직까지 아무도 통과하지 못 했다는 일련의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는 게 아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입니다. 직접적인 대립을 그리기 이전에, 동료 간의 결속 같은 걸 전제로 하는, 그리고 그 안에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인간이라거나 친구라는 개념들. 결코 서두르는 일 없이 천천히 일련의 가치들을 유린하는 모습은 전작보다 훨씬 훌륭하게 가정극으로서 이 이야기를 성립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뭐, 배틀로얄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는 대체로 그렇습니다만, 사실 이 작품은 상당히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이 작품 자체가 '불쾌'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마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배틀로얄, 그리고 블리츠로얄, 가치 이전에 '사람'을 유린하는 이 작품이 결코 즐거울리 없으니까요. 문제는 그걸 표현해내는 방법의 문제입니다만, 블리츠로얄에서는 그런 부분들을 읽어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배틀로얄은 배틀로얄인데, 서로 총을 겨누고 죽이려고 드는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맨 처음에 섬에 도착한 아이들에게 주이진 과제는 '시체 청소'라는 일입니다만,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그 부분에서 소통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학교 생활(?)로서 매번 해야할 일로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해서'라기엔 교관들의 태도가 느슨하고, 결국에 아이들은 한 구의 시체도 치우지 못 한채 그 부분은 끝이 나버립니다. 이 섬에는 그런 '맥락'이 있다는 배치이긴 합니다만, 스토리 안에서 그것이 가진 가능성은 극단적으로 넓어져 버린 채, 의도라던가 복선으로서 작용하는 일은 '전혀'없이 그냥 그걸로 끝이라는 거죠.

수면가스 샤워실, 폭주군인, 투용정(뜻대로 풀이하면 전투심이 솟아나는 알약), 심지어는 학생의 목걸이 리모컨 탈취와 이전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았다고 하는 나카야 미와의 등장까지. 나카야 미와의 경우에는 한 명도 살아남은 적이 없다는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았다고 하니 전개상 모순이기도 하고, 실제로 군관계자로 나옵니다만 프로그램에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는 것도 상당히 이해하기 힙듭니다. 그런 일련의 부분들 하나하나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그러니까 왜 그렇게 되는 건지 그것들 하나하나가 가진 의도를 설명해주는 일은 결코 없다는 거죠. '잔혹한 이야기'라는 의심할 여지없는 이야기를 그저 열어제껴버림으로서 '기분은 나쁜데' 어디가 잔혹한지 구체적으로 집어낼 수 없는, 말그대로 여기에서조차 '뭔 소린지 모르겠'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셈이죠.

의도가 없어보이는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그려내는, 사실 이 방법은 토미자와 히토시 씨가 다른 작품들에서 이야기를 전개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에이리언9의 경우, 에이리언과 동시에 '침략'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야기 자체는 아주 구체적으로 제9초등학교의 소녀 3명을 클로즈업해서 그려냅니다. 그 안에서도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가진 맥락이라거나 소재들은 의도를 읽어내기가 매우 곤란합니다만, 동시에 그것들이 착실히 엮여지면서 세계마저도 유추해낼 수 있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쉽게 말해 그려두지 않은 걸 보여준다는 겁니다. 제 자신 SF라는 단어를 토미자와 히토시 씨 작품에서 처음 의식하게 된 쪽이라 잘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SF가 가진 매력은 그런 부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문제는 이 작품이 '배틀로얄'이라는 점이라는 게 아닐까 합니다. SF처럼 '독자에게 알려지지 않은 세계' 같은 환기시킬 대상을 가지지 않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가정극 속에서 배치 하나하나가 가진 의미는 말그대로 증발해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 토미자와 씨의 작품에서는 자주 육체, 그리고 세계의 파괴와 재생이라는 모티브가 등장하곤 합니다만, 여기 대동아공화국에서는 어쨌건 한 번 파괴된 육체는 파괴된채로 있게됩니다.1

단지 그 부분만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블리츠로얄이라는 세계는 분명 현실과 또다른 세계일지도 모릅니다만, 토미자와 히토시 씨의 방식으로 재미를 유추하기에 배틀로얄이라는 세계관은 너무 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SF적인 가능성을 유추해내기에는 삭막한 세계라는 얘기죠.

배틀로얄(만화)은 액션이 돼버렸고, 블리츠로얄은 SF가 돼버렸다, 라고.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가정극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이라는 데 좀 더 집중한 블리츠 쪽이 저는 더 좋습니다만, 뭐 적어도 2권으로 토미자와 씨가 그리고 싶은 걸 집약해낼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1 ブリッツロワイアル 1권